편집부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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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계의 거성, 이븐 바투타 따라잡기!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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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11-06-13 00:00 조회3,5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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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처럼의 풋내기 편집자입니다.(산처럼이 1인 출판사로 워낙 알려진 터라 "직원이 있었어?!!"라며 놀라시는 분들이 제법 있더라구요. 네, 여기 직원 있습니다.)

<편집부의 책상>에서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산처럼 편집실의 복닥복닥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일수도 있겠고, 초보 편집자의 허당일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오늘은 첫 시작인 만큼 가볍게, 어깨에 힘 쫙 풀고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해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이 그 주제인데요. 무턱대고 저의 여행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터! 산처럼의 책을 통해 소개되었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길을 쫓아 보려고 합니다. 

무려 30년 동안 12만 킬로미터를 떠돈, 여행자계의 대부인지라 감히 모든 여정을 따라갔다간 가랑이 찢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데이비드 웨인스 지음, 2011

sanbooks.com/Album/Album.asp







  







이븐 바투타의 여행 경로입니다. 지금의 중동/아프리카 부근인데요, 전체 경로 중의 아주 극히 일부라는거!! 동남아시아, 중국, 중앙아시아까지 대륙과 대륙 사이를 동네 옆집가듯 마구 넘나들었더라구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저희 사장님과 저 모두 이븐 바투타가 거쳤던 곳들을 다녀왔다는 사실!! 마치 운명처럼요.(이런 마음으로 원고를 보았었죠;)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구역이 보이시나요? 바로 저곳입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일대와 시리아 부근이지요. 








블루 모스크, 이스탄불





동서양이 만나는 곳,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잘 알려진 ´이스탄불´입니다. 이스탄불이 지닌 역사적 깊이와 문화적 다양성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요!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대표적 관광지 술탄아흐멧 지역에 가면 두 개의 웅장한 건축물을 볼 수 있습니다.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인데요.

이런, 이븐 바투타는 무려 700여년 전에 이곳 아야 소피아를 다녀 갔더군요!




 





콘스탄티노플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한 설명은 긍정적이었지만 거대 교회 아야 소피아에 대해서는 외관만 묘사해놓았을 뿐이었다. 내부를 보지 않아서였다. 이유인즉 그곳에 들어가려면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만 했는데 그 행위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만난 한 수도사는 이븐 바투타가 성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듣더니 이븐 바투타의 발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고는 그 손을 자기 얼굴로 옮겨갔다.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330쪽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야 소피아는 처음에 로마 제국의 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이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모스크로 쓰였다죠. 이븐 바투타가 아야 소피아를 방문했을 당시가 1300년대이니, 아직 모스크로 사용되기 전이네요. 독실한 이슬람교도답게 종교적 신념을 지키느라 아야 소피아 내부는 보지 않았군요.







하.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실제로 보면 더욱 웅장한데 사진에는 한계가 있네요. 지금은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어떠한 종교적 행위를 금지한 채, 박물관으로만 쓰인다고 합니다.





사실 이븐 바투타가 처음부터 세계일주를 꿈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슬람교도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다녀온다는 메카로의 성지순례가 그 시작이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겁니다. 지금이야 해외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고, 세계일주를 하는 장기여행자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이븐 바투타가 살았던 시절만 해도 정말 대단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게다가, 본문에도 나오지만 당시 이븐 바투타 주변의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영역인 ´움마umma´(세계의 무슬림 공동체를 이르는 말) 안에서 대개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문화적 양식을 지니고 있고, 같은 신자이다 보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덜 했겠지요. 하지만 이븐 바투타는 움마를 넘어 힌두교가 지배적인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국에까지 여행의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주로 대상隊商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거친 사막을 건너는 데 낙타는 필수였겠지요? "움직이는 작은 마을"과 같았다는 표현만 보더라도 이들의 일정에서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네요.


 





여행에는 강과 해로를 건너기 위한 다양한 운송수단을 활용할 줄 아는 여행안내자 및 운수전문가의 기술과 노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또한 왕국 혹은 대륙이 맞붙은 땅을 넘나드는, 진정으로 역동하는 집단 그 자체인 대상隊商의 도움을 받아야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15쪽
 



다마스쿠스에서 메카에 이르는 대상의 여행은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순례자들을 쉬게 하는 단기체류를 포함해 모두 45∼50일 정도가 걸렸다. 물 문제, 즉 물 부족은 여행자가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문제였다. (...) 이븐 바투타는 돌덩어리에 새겨진 문구에 이르길, 그 바람 때문에 모든 물길이 말라붙어 물 한 모금 값이 1천 디나르에 달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물장수와 마지막으로 물을 사먹은 사람이 그 최후의 거래를 나눈 뒤 둘 다 죽어버렸다고 했다.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73쪽



첫 번째 성지순례를 마치고 메카를 떠나 쿠파로 향할 때는, 대상이 도보여행을 하는 가난한 순례자들(아브나 알사빌)을 위해 물을 싣고 나르는 낙타들을 대동했다고 말했다. 또 중간에 병을 얻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약품과 설탕, 그리고 자선물품으로 나누어줄 물건들을 실은 낙타도 있었다. 대상은 움직이는 작은 마을과도 같았다.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141쪽~142쪽
 








 





 



"밤새 피가 나올 지경으로 걷고", 배 침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으며 온갖 생고생을 다한 이븐 바투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전 이렇게 벤츠 버스를 타고서 편하게 국경을 넘나들었네요. 두번 째 사진은 터키의 국경도시인 안타키야에서 시리아의 하마로 이동하는 버스 티켓입니다.(손글씨로 버스 좌석이며, 탑승 시간을 적어 놨는데 뭐라 썼는지 당최 알아먹질 못했다는..)





터키의 중심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살~짝 훑어봤으니, 본격적으로 아나톨리아 일대를 따라가 볼까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 보도자료가 파일 첨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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