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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비운의 朝鮮걸작’ 왜 유랑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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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1-01 00:00 조회1,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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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 / 김경임 지음 / 산처럼



‘몽유도원도’는 조선전기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화가 안견의 유일한 진작(眞作)이다. 크지 않은 기다란 비단화폭에 수묵으로 그려진 험한 산수를 지나 분홍빛에 금빛을 더해 그린도원경에 이르는 꿈속 스토리가 화사하게 펼쳐진 산수화다.



그림 한 폭으로 조선전기 세종대왕 시절 산수화의 수준을 내세울 수 있고,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 수묵화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준 한국회화의 역할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한편 ‘몽유도원도’는 역사적 비운의 주인공처럼 비애의 스토리를 안고 있다. 1447년 초여름 도원으로 드는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리도록 한 주인공은 안평대군(이름 이용)이다. 그는 수양대군의 쿠데타(계유정난)로 가족까지 몰살됐다. 안평대군이 도원을 꿈꾸고 그림으로 그리게 한 뒤 도원처럼 꾸며 가꾼 그의 터는 반역의 공간으로 처단되고 허물어졌다. 그러면 ‘몽유도원도’는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올까.



이 서화는 계유정난(1453) 때 안평대군이 희생되면서 함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1893년 일본에 다시 등장한 이후 1950년 덴리(天理)대학이 소장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책은 조선전기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역사적 예술품인 ‘몽유도원도’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소설처럼 엮어낸 탐구저술이다.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 사연과 함께 오랜 역사의 비바람 속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서사의 드라마다. 저자는 문화재 유통에 남다른 관심으로 저작생활을 병행해온 여성외교관이다.



저자는 ‘몽유도원도’가 그려지던 15세기 한양에 머물다가 그림이 존중받던 일본의 현장들을 탐방하며, 수백 년의 시간여행을 감행했다. 안평대군의 행적과 그에 대한 문헌들을 다시 검색했다. 안평대군이 주도한 세종대왕 시절 화려한 문화사업복원시키면서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심리를 오가다가, 그 시절 꿈의 기록이 가지는 기능을 찾느라 꿈에 대한 옛 문헌을 다시 읽었다. ‘몽유도원도’ 제작 이후 이 그림이 숨겨져 보호된 상황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시마즈(島津) 하루히사 댁을 몇 년에 걸쳐 다시 찾아가 20세기 유랑상황을 파악했으며, 일본의 기록문서들을 샅샅이 뒤졌다.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가 어떤 의미를 담고 탄생하게 됐으며 어떻게 역사의 물결을 타고 유랑하게 됐는지 이 책에서 그 흔적을 끈질기게 추적한 것이다.



책은 ‘몽유도원도’의 시대적·사상적· 문화적 탄생 배경을 고찰하고, 안평대군의 삶과 문화적 이상을 추적해 그림에 담긴 의도를 밝히고자 했다.



교토(京都)대학 나이토 고난 교수의 ‘조선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덴리대학 스즈키 오사무(鈴木治) 교수의 ‘비브리아’(덴리대학 도서관보)에 실린 내용에만 의존해 ‘몽유도원도’를 해석하던 수준을 넘어 처음으로 한국 연구자의 시각으로 조사·연구해 ‘몽유도원도’의 전후 상황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1928∼1929년 무렵 소노다 사이지(園田才治)라는 사업가는 교토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나이토 교수를 찾아가 한 고서화를 보여줬다. 나이토 교수는 단번에 이 서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임을 알아보고 ‘조선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몽유도원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최초의 글이다. 계유정난 때 안평대군과 함께 사라졌던 이 서화가 세상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시마즈 가문이 ‘몽유도원도’를 소유하게 된 것은 1929년 ‘몽유도원도’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던 나이토 교수가 밝힌 것처럼, 임진왜란에 출전했던 사쓰마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전쟁 초반 조선 왕실의 원찰이었던 대자암을 약탈해 획득한 뒤 일본에 가져간 것이었다.



이후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수석 가로인 시마즈 히사나가에게 ‘몽유도원도’를 하사했으며, 시마즈가의 소장품이 됐을 것이다.”



박병선 역사학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 관계에 쟁점으로 부각시킨 뒤 한·불 관계의 외교 회담에서 일순위가 외규장각 도서가 됐다. 이 책을 통한 ‘몽유도원도’의 실체 파악도 한·일 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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