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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신간 탐색´ 당대의 과제를 제기한 ‘문화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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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0-31 00:00 조회1,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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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란 무엇일까. 백승종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라고 본다. <금서, 시대를 읽다>는 그가 조선 후기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금서 8종을 시대순으로 놓고 그것들의 문화적 의미를 분석한 책이다.






<금서, 시대를 읽다> 백승종 지음·산처럼·1만5000원






분석 대상이 된 텍스트는 조선 후기 <정감록>, 구한말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 단재 신채호의 <을지문덕>, 시인 백석의 <백석 시집>, 시인 김지하의 <오적>, 작고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한때 ‘금서’ 낙인이 찍힌 책들인데, 저자는 이 텍스트들을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읽는다. 당대의 민감한 시대적 과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권력자의 눈밖에 난 책들이라는 점에서 금서란 기성세력과 새로운 세력 간의 격렬한 문화적 충돌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라는 생각에서다.



예컨대 <정감록>을 보자. 저자는 조정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이 삽시간에 퍼진 배후에 조선 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있다고 본다. <정감록>을 유포한 죄로 처벌된 이들은 대체로 성리학과 의술, 풍수지리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갖춘 평민들이었다. 저자는 이들 평민지식인이 <정감록>을 읽고 유포하는 행위를 통해 성리학이라는 견고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상대로 문화투쟁을 수행했다고 본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1908년 출간됐다. 50여쪽 분량의 이 얄팍한 신소설은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재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지만, 대한제국은 1909년 법령으로 이 책의 판매를 금지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허울뿐인 이름만 남은 채 일제 통감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통감부는 <금수회의록>에 깔려 있는 안국선의 반제국주의적 태도를 문제삼았다. 여덟 마리 동물들의 회의 내용을 1인칭으로 실은 이 액자소설은 구한말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서이기도 했다. 안국선은 이 같은 시대 상황에 맞서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사상투쟁을 전개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남한 현대사의 대표적인 금서들인 <오적>, <8억인과의 대화>, <태백산맥> 등도 각기 군사독재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문화에 대한 비판,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재평가, 우편향된 현대사에 대한 교정 시도라는 점에서 문화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어떤 책의 유통을 막으려는 권력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은 ‘권력의 의지’가 아니라 ‘책의 깊이와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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