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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금서는 변화 욕구 억압에 맞선 문화투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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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0-29 00:00 조회1,4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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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nbooks.web01.ybuilder.kr/data/editor/2111/e20121026173714118180.htm^|^[책과세상] 금서는 변화 욕구 억압에 맞선 문화투쟁 역사^|^20121026173714^|^^|^

금서(禁書)란 정치·도덕·종교 등의 이유로 간행이나 열람, 유통, 소지 등을 금지하는 책을 말한다. 금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의´제신(諸神)에 관하여´는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노자의´도덕경´은 춘추시대 당시 지배적인 유가 사상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한국에도 금서가 많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411년 조선왕조의 정치적 안정을 저해하는´참위서´´음양서´와 같은 예언서들을 불태우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산군 때는 한글로 쓴 격서(檄書)를 통해 왕을 비난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한글 서적을 모두 금지 시키기도 했다. 19세기에는 동학이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자 동학의 경전인´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금지했다. 이 후 역사 속에서는 숱한 금서가 만들어졌다.



책은 이 같은 금서를 통해 한국 근 현대사를 조명한다. 철학 및 역사 연구가인 저자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금서 가운데 8권을 통해´문화 투쟁´의 관점에서 살핀다. 문화 투쟁이란 새로운 사상과 관점을 주장하는 금서의 저자들과 그들을 억압하는 지배세력 또는 기득권층 사이의 문화적 충돌에 주목하는 것을 말한다. 책은 금서의 저자나 독자, 금서 조치를 내린 권력자들에 대해 소개하면서 금서에 담긴 다양한 문제를 살피고 금서 조치를 취한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맥락까지 짚어낸다.



´정감록´은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지역차별 정책에 의해 소외된 지역인 함경도에서 조선 영조 때 유행하기 시작한 이 책은 나라의 멸망을 예언했다는 이유로 금서로 분류됐다. 저자는´정감록´을 널리 퍼뜨린 배후 세력으로 평민지식인을 지목한다. "평민지식인은 성리학은 물론 의학, 풍수지리 등을 배운 유랑 지식인이었지만 신분의 벽에 막혀 현실 비판적인´정감록´을 애호하게 됐고, 이들은 이 책을 도구 삼아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상대로 문화투쟁을 벌인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서정시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가 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읽을 수 없었던 책도 있다.´백석 시집´은 6·25전쟁이 끝난 시점에 금지됐다가 1987년 해금됐다.´백석 시집´은 시의 내용이나 그 저변에 흐르는 사상 때문에 금서가 된 것이 아닌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금지된 책이다. 이 밖에도 구한 말 시국에 저촉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조선책략´´금수회의록´´을지문덕´등은 금서로 분류됐다. 죽의 장막(비공산권 나라에 대한 중국의 배타적 정책)에 가려져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8억인과의 대화´를 비롯해 부패한 독재정권을 질타했던´오적´, 빨치산의 역사를 썼다는 이유로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금서 작가들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금서 작가들의 문화 투쟁이야말로 함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금서를 배태하는 본질적인 동기를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켜내려는 지배 권력의 야욕에서 찾는다. 저자는 "지배 권력이 때론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사상과 표현을 억압하지만 긴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결정적 한계를 노출하게 마련"이라며 "때가 되면 역사 무대의 주인공도 바뀐다. 그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금서 저자들의 다양한 ´서사전략´"이라고 덧붙인다. 1만 5,000원. /





김민정기자 je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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