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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금서 역사, 기득권에 대항한 ´문화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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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0-29 00:00 조회1,2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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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문화투쟁 풀어내





누구나 금서(禁書)을 읽은 경험이 있다. 대부분 부모님 책꽂이에 꽂힌 외설이나 삼촌의 가방 속에 든 야한 잡지가 첫 경험일 것이다. 이런 책이 금서가 된 이유는 하나다. 일찍 접하면 잘못된 성 윤리관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거다.



부모님이나 삼촌이 정하는 것 말고 국가나 한 사회가 정하는 금서에도 이러한 이유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미풍양속과 성 윤리. 최근 판매 금지가 번복된 ´소돔의 120일´이란 책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정권과 종교 세력의 기득권 보호다.



´금서, 시대를 읽다´는 금서의 역사가 바로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문화투쟁´의 역사로 인식한다. 문화투쟁이란 개념이 거창하게 들린다. 여기서 문화란 정치, 경제, 사회 등 세분된 특정 분야 가운데 하나로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의 총합. 즉 새마을 운동, 산업화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까지 모두 우리 역사의 문화투쟁으로 새 시대를 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본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기득권자나 집권층과 부딪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은 조선 시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책 8권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문화투쟁을 풀어낸다.



금서, 시대를 읽다/ 백승종

´정감록´은 조선 영조 때 함경도에서 등장해 30여 년만에 전국으로 퍼진 조선 최고의 베스트 셀러. 저자는 정감록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평민 지식인´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당시 서당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평민 지식인이 많아졌지만, 이들은 신분의 벽에 가로막혔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퍼트린 정감록은 이후 동학과 원불교 등의 신흥종교가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선책략´은 정감록과 달리 나라가 아닌 유생이 금지를 외쳤다. 한·중·일 3국이 미국과 연합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고종은 이에 찬성했지만, 유생들은 달랐다. 조선책략은 개화파인 신지식인과 척사파인 보수 집권층의 대립을 통해 문화투쟁을 보여준다.



구한말 신소설로 인기를 끌었던 ´금수회의록´은 여덟 동물의 입을 빌려 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 안국선은 평등과 같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해 제국주의, 매국노를 비판하고 더 나아가 가정윤리를 파탄한 신여성 등 현대문명까지도 비판한다. 일제가 이 책을 금서로 묶은 것은 당연지사. 민족주의 역사가였던 신채호가 쓴 많은 책도 일제 치하에서는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민족주의적 영웅사관을 담은 ´을지문덕´과 같은 책을 통해 문화투쟁을 벌인다.



백석의 ´백석시집´, 김지하의 ´오적´, 리영희의 ´8억 인과의 대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같은 현대의 금서는 저자와 제목만 봐도 짐작이 간다. 냉전 이데올로기, 군사독재정권과의 문화투쟁이다.



책장을 덮으면 ´나쁜 사마리아인´ ´지상 위에 숟가락 하나´ 등 2008년 국방부가 지정한 금서 목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책이 지금 이 시대에는 또 어떤 ´문화투쟁´의 의미가 있는지 우리도 한 번 생각해볼 만하다. 백승종 지음/산처럼/288쪽/1만 5천 원.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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