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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옥에 갇혀 칼을 찬 춘향? 남자 죄수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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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6 00:00 조회1,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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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를 고하여라

심재우 지음, 산처럼

344쪽, 1만8000원




부제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에서 짐작이 가듯 조선 시대의 형사제도를 조명한 역사교양서이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가 한국역사연구회의 웹진에 4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터라 본격적인 학술서라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우리 역사의 갈피를 메운다는 점에서 반갑고,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기에 흥미롭다.



 우리 고전문학에서 가장 대중적이라 할 ‘춘향전’을 떠올려 보자. 이몽룡과 역졸들이 “어사 출도”를 외치며 동헌으로 들이닥쳐 칼을 찬 춘향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거 허구다. 조선의 형률에서는 남자 죄수에게만 칼을 채우도록 했기 때문이다.



영조 23년(1747년)에 여자 죄수에게 불법적으로 칼을 채우는 사례가 종종 있음을 지적하며 임금이 원칙대로 할 것을 지시한 기록이 있다. 수청을 거부한 춘향을 괴롭히는 무도한 변학도가 규정을 무시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법대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 형벌인 치도곤 집행 장면. 강도가 위력적이어서 잘못 맞으면 뼈도 추스르기 힘들었다고 한다. 김윤보 그림 ‘형정도첩’의 일부.


 곤장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5세기부터 ‘곤장’이란 용어가 등장하지만 이는 번역상의 실수라고 지적한다. 16세기 말 이후에야, 그것도 군인과 도적에 한해서 곤장을 때렸다는 것이다.



이전엔 ‘태’와 ‘장’이라 해서 길이는 1미터 남짓하고 굵기는 지름 1센티미터 안팎인, 일종의 회초리가 사용됐다. 또한 곤장형을 실시할 수 있는 권한도 제한되어 군사권을 가진 변방의 일부 수령을 제외한 일반 고을수령은 곤장을 사용할 권한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 판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나온다. 조선의 형벌은 태· 장· 도(노역형)· 유(귀양)· 사(死) 다섯 가지. 통념과는 달리 노비도 귀양 보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신분에 따라 그 처우가 달랐다는 것이다. 경종 2년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길에 오른 윤양래는 가는 곳마다 고을 수령에게 접대를 받아 선물을 싣고 가던 말이 그 무게를 못 이겨 넘어지는 일이 있을 정도로 양반들은 유람길인지 유배길인지 모를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교 이념과 신분제 사회라는 틀을 감안하면, 중국의 『대명률』을 본받은 조선의 형사제도는 “네 죄를 네가 알렷다”식의 막무가내식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인간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시각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자료까지 섭렵한 결과를 토대로 유럽에 비해 동양의 형사제도가 비인간적이란 인식은 19세기 제국주의의 득세 이후 만들어진 편견이라는 것이다. 곤장의 종류까지 세세하게 규정한 정조 때 『흠휼전칙』이나 종기 치료를 위해 뜸을 맞은 영조가 자신의 고통을 반추하며 발바닥을 지지는 고문인 낙형을 금한 사례를 보면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라 해서 역사 읽기의 목적을 교훈을 찾는 데 두는 시각도 많지만, ‘상식’이 깨지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인기 미국 TV드라마 CSI를 연상케 하는 과학적 검시방법에 대한 소개나 마지막 장 ‘죄와 벌에 비친 조선 사회’ 에 실린 일화만으로도 이 책은 역사교양서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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