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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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춘향에게 칼을 씌우고, 곤장까지 치라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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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6 00:00 조회1,9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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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는 더 억울했으리라. 감옥에 갇힌 것도 모자라 목에 ´칼´까지 쓰고 있어야 했으니…. 조선왕조 기본법전인 ´경국대전´ 규정을 보면 왕실과 가까운 친인척, 공신, 관리, 부녀자는 사형에 처할 죄를 지었더라도 칼을 씌우지 못하게 했다. 1747년 영조는 당시 여자 죄수에게 불법적으로 칼을 씌우는 사례가 종종 있었음을 지적하고 원칙대로 할 것을 지시했다. 적어도 영조 때까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여자들에게 칼을 씌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춘향전´에서 감옥에 갇힌 춘향이가 칼을 쓰고 있는 모습은 당시 규정에 맞지 않았다. 고전소설에 나타난 조선 시대 형벌의 오류다. ´여자에게 칼을 씌우지 않는다´는 영조의 명령은 한말까지 잘 지켜진 듯하다. 한말 배경으로 칼을 쓴 죄수들 사진을 보면 그러하다. 남자 죄수들은 저마다 목에 칼을 쓰고 있다. 반면 여자 죄수는 칼을 쓰고 있지 않다.



역사드라마에서도 조선 시대 법률과 형벌의 왜곡된 모습은 종종 비친다. "죄인에게 곤장을 매우 쳐라"는 고을 사또의 말이 떨어지면 형리들은 두툼한 곤장으로 죄인들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1778년 정조는 관리들의 형벌 남용을 막기 위해 각종 형구의 크기를 통일한 ´흠휼전칙´을 간행, 반포했다. 이 책을 보면 곤장을 사용하는 자들이 정해져 있다. 통제사, 병조판서나 지방파견된 2품 이상의 고위 관리만이 곤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일개 마을 수령은 사용 권한조차 없었다. 곤장은 또 다른 신체형인 태형, 장형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태와 장은 길이가 1m를 조금 넘고, 지름이 1㎝가 채 안 됐다. 곤장은 길이가 최소 1.5m가 넘고 배를 젓는 노와 같이 넓적하게 생겼다. 곤장은 뼈를 추스르지 못할 만큼 위력이 대단해서 군법을 집행할 때만 사용했다.



형벌로 본 조선의 사회상

부녀자는 칼 씌우지 않고

곤장은 군법 집행 때만 사용

시대를 뒤흔든 사건 추적 분석




´네 죄를 고하여라´는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과 형벌의 현장을 세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오해와 편견 속에 갇힌 조선의 법률 문화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있다. 조선 시대 형벌과 고문, 죄와 벌을 둘러싼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 법률문화란 프리즘으로 바라본 당대 사회상을 분석한다.



법률과 형벌에 비친 조선의 풍경은 흥미롭다. 이때도 화학물질을 활용해 혈흔을 찾는 과학적 수사기법이 존재했다. 1308년 중국 원나라에서 간행된 법의학서로 조선에서도 널리 활용됐던 ´무원록´에 나온다. 살인자가 사용한 흉기로 의심되는 칼을 숯불로 달군 뒤 고농도의 식초로 씻어낸다.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혈액단백질 성분이 산에 노출되면 응고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오늘날 과학수사팀이 현장 감식 과정에서 혈흔을 찾기 위해 ´루미놀´이라는 질소화합물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선 시대 변사 사건 수사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만큼 허술하지는 않았다.







사형집행인 망나니의 원래 신분을 아시는지? 죄인의 목을 단칼에 베야 하는 망나니는 원래 사형수였다. 18세기 만들어진 법전 ´신보수교집록´의 형전 ´추단´ 항목을 보자. 참형 집행을 맡은 망나니는 정치범이 아닌 일반 사형수 가운데 자원하는 자를 허락한다는 숙종의 명이 실려 있다. 이보다 100여 년 뒤인 고종 때 편찬한 법전 ´육전조례´에서도 마찬가지. 지금의 서울 구치소에 해당하는 관청인 ´전옥서´ 소속의 행형쇄장 한 명을 사형수 중 원하는 자가 있으면 왕에게 아뢰어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조선 시대 내내 사형수만이 망나니 일을 전담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 망나니의 일부는 사형수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원하게 됐을까. 망나니가 되면 사형에서 감형됐고 그들은 감옥에 머물면서 사형 집행이 있을 때에만 눈 한번 딱 감고 휘두르면 됐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법률과 형벌문화 전반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중국, 일본의 법률체계와 형벌, 고문방식, 감옥, 형구의 생김새와 쓰임을 조선의 것과 대조·비교하기도 한다.



저자는 "법에 대한 이해가 당대 사회와 문화를 읽어내는 데 중요한 코드임에도 조선사 연구에서 법률문화의 비중이 작았다"며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제시해 대중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하게 하는데 초점을 뒀다"고 했다.

심재우 지음/산처럼/344쪽/1만 8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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