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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네 죄를 고하여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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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0 00:00 조회1,4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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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는 곤장을 치게 할 권한이 없었다







´네 죄를 고하여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여봐라, 저 죄인에게 곤장을 매우 쳐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V 역사 드라마에서 고을 사또가 죄인들을 호령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사또의 명이 떨어지면 형리들은 두툼한 곤장으로 죄인들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역사 드라마에는 고을 사또가 곤장으로 죄인들을 다스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허용된 행위가 아니었다.



곤장은 군법을 집행하거나 도적을 다스릴 때 사용했으며 변방의 수령 등 군사권을 가진 일부 수령을 제외하고 고을 수령은 곤장을 사용할 권한이 없었다.



곤장은 또 다른 신체형인 태형, 장형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태형과 장형을 집행할 때 사용했던 태와 장은 길이가 약 1m, 지름이 1cm 남짓으로 회초리를 연상케 했지만, 곤장은 길이가 최소 1.5m를 넘었을 뿐 아니라 생김새도 배를 젓는 노와 같이 넓적하게 생겨서 타격 강도가 태와 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곤장을 잘못 맞았다가는 뼈를 추스르기도 어려웠으며 곤장 집행 장면은 눈뜨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곤장의 ´위력적인´ 효과 때문에 일부 고을 수령들은 금지 규정에도 곤장을 사용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조대 무렵부터 사용된 곤장은 중국에서 사용된 적 없는 조선의 독특한 형구였다.



신간 ´네 죄를 고하여라´(산처럼 펴냄)는 곤장 치기를 비롯해 주리틀기, 능지처사 등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조선시대 형벌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인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조선시대 형벌의 역사를 살펴본 뒤 ´잔인하고 미개한´ 것으로 평가절하된 동양의 형벌에 대한 편견을 비판한다.



중국 명나라 대명률(大明律)을 따랐던 조선의 법률체계는 나름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서양에는 우수한 법제도와 인권 의식이 있고 동양은 그렇지 못했다는 식의 이해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편협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죄인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능지처사도 역모를 꾸민 대역죄인,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 등에 한해 집행됐으며 자주 집행된 것도 아니었다.



역사 속 형벌 이야기도 흥미롭다.



문신도 조선시대에는 하나의 형벌이었다.



경형 또는 묵형이라고 불리는 자자형(刺字刑)은 대개 도둑질한 자들에게 가했던 형벌로, 얼굴이나 팔뚝에 죄명을 새겨넣었다.



바늘 10여 개를 묶어서 살갗을 찔러 ´도우(盜牛)´, ´도마(盜馬)´ 등의 죄명을 새겨넣고 먹을 칠한 뒤 베로 그 부위를 싸매어 죄수를 사흘 동안 옥에 가둬뒀다.



자자형은 몸에 새겨진 글자가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형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됐으며 조상의 제사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은 죄를 지어 평생 얼굴에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를 퍼붓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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