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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책과 삶]에 소개된 <퀴어 코리아> "이상, 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퀴어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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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23-02-23 10:41 조회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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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코리아

토드 A 헨리 외 지음·신진연구자네트워크 옮김|산처럼|560쪽|3만5000원

시인 이상. 경향신문 자료사진

시인 이상.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대 추문의 주인공이던 이상
학계 동아시아 퀴어 연구서 주목
대표작 ‘날개’의 시간성에 집중
‘이성애-선형적’ 주기서 벗어난 ‘퀴어한 시간’

이상(李箱·1910~1937)만큼 한국 근대문학에서 주목받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숨지며 그의 대표작 ‘날개’에 나오는 구절처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되었다. 이상은 모던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인 천재이자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상은 해외 학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예일대 동아시아어문학과 명예교수로, 식민지 시기 한국문학에 관해 연구해온 존 휘티어 트리트는 <퀴어 코리아>에서 말한다. “나는 모든 ‘이상들’을 ‘퀴어’로 옮기겠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필명 이상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는데, 조선총독부 건축과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일본인 동료들이 그를 일본어로 ‘이상’, 즉 이씨라고 불러서 필명을 정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 학생 시절 이미 자신을 이상으로 불렀다. 그외에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트리트는 이상이 최초로 발표한 시의 제목이 ‘이상(異常)한 가역반응’(1931)임에 주목한다.

이상은 동아시아 퀴어 연구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호명된다. “동아시아의 정전(正典)에서 퀴어성의 흔적을 샅샅이 찾아내는 일은 최근 학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고 있다. (…)이상은 강력한 후보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조숙을 상징하는 일종의 ‘포스터 보이(poster boy)’가 되었다.”

이상은 ‘천재 시인’으로 후대에 재평가됐지만, 당대엔 추문의 주인공이었다. “마약을 하며, 난잡한 술자리를 갖는가 하면 중혼을 하고, 어쩌면 양성애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월터 루는 “설령 남성 대 여성을 넘어선 특별한 어떤 유일한 것이 되어 있는 한이 있더라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야”(연작시 <위독> 가운데 ‘매춘’의 구절)라는 시구를 언급하며 이상의 작품에 대한 퀴어적 독해가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문은 “자웅보다는별것이어야겠다”인데 권영민은 “맞서서 겨루기보다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화가 구본웅이 친구인 시인 이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친구의 초상’(1935, 캔버스에 유채, 62×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사진 크게보기

화가 구본웅이 친구인 시인 이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친구의 초상’(1935, 캔버스에 유채, 62×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트리트는 이상이 ‘퀴어’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 화자인 ‘나’와 아내가 살아가는 시간성에 주목한다. 낮과 밤이 뒤바뀐 시간, 낮에는 자고, 밤에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비생산적 시간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이성애-선형적’ 시간에 대립되는 ‘퀴어한 시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성애-선형적 시간이 ‘유년기-결혼-재생산-육아-죽음’으로 구성되는 생애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성애적 삶을 의미한다면, 퀴어한 시간은 이로부터 벗어난 시간이다. 이상의 소설은 “이성애와 민족주의의 ’재생산 미래주의(재생산을 통해 미래의 지속과 보호를 정치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이념)’를 거부한다.” 주인공은 너무 일찍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경성역 시계탑 근처를 배회하는데, ‘시계탑’은 일본 제국주의가 강요한 식민지 근대의 시간규범성을 상징한다. 트리트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 퀴어를 이해”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이상이, 그때는 퀴어가 아니었다고 해도, 지금은 분명히 퀴어인 이유다”라고 말한다.

[책과 삶]이상, 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퀴어인 이유

북미, 한국, 대만 출신 등 다양한 연구자
한국 근현대사·문화의 ‘망각된 기억’ 연구
한국 학계에서 퀴어 연구 어려운 현실 반영

<퀴어 코리아>는 “이상이 퀴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기획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문화 연구에서 잊히거나 삭제됐던 ‘퀴어성’을 발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북미와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백인 미국인, 대만 출신의 비백인 연구자 등 북미와 한국에 기반을 둔 연구자·활동가·예술가 사이의 초국가적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2014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퀴어코리아를 기억하기’라는 제목으로 이뤄진 기획에서 출발했다.

왜 한국이 아닌 북미에서 쓰였을까? 한국이 ‘퀴어연구의 불모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을 편저한 토드 A 헨리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역사학과 부교수는 한국에선 퀴어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이 제도적 지원을 받기 어렵고, 해외 대학교에서 학위를 따도록 ‘강요’받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 “퀴어 연구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한국) 학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퀴어 코리아>가 미국을 거쳐 한국에 소개됐다는 점이 바로 한국 퀴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헨리는 1990년대 후반 처음 서울을 찾았을 때 “한국에는 동성애자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곧 그 말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의 ‘노 게이 신화(no gay myth)’는 진실에 관한 서술이 아니라 LGBTI 시민의 경험을 더욱 주변화하는 정치적 기제”라고 말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됐지만, 그 이전 시대에 관한 퀴어 연구는 거의 없었다. 식민지·전쟁·분단 경험 속에서 “학자들은 한반도 사회와 문화를 민족적, 이성애가부장적 순수성이라는 틀에 넣으려는 경향”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퀴어 코리아>는 “한국학을 퀴어화”함과 동시에 서구 중심의 퀴어 연구를 ‘지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이상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트리트는 ‘날개’를 식민지 체제 조선인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사 비평은 한반도의 모든 경험을 ‘한국적’인 것으로 총체화해서, 그 안에 개인의 경험이나 성향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다”는 존 프랭클의 말을 인용하며 ‘날개’의 화자를 ‘모든 조선인’으로 만들지 않고 ‘유일무이한 퀴어’로 간주하고 싶다고 말한다. 트리트의 글을 통해 이상의 작품에서 보이는 동성애적 요소들을 한국 비평가들이 ‘고된 여정’ 끝에 “고독한 이성애자”의 행위로 결론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글을 거쳐 우리는 이상의 작품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게 됐다. “퀴어성은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역동과 사회문화를 드러내는 해석으로 나타난다.”

심우섭 감독의 1969년작 <남자와 기생>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심우섭 감독의 1969년작 <남자와 기생>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인기였던 ‘여장남자’ 영화
‘남자 기생’ ‘남자 하인’ 등 상업적 성공
젠더 규범의 전복과 회복 오가는 ‘젠더 트러블’

1960년대 후반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B급 코미디 영화를 ‘젠더 트러블’의 사례로 분석한 김청강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부교수의 글도 흥미롭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남자 식모>(검열에 의해 개봉 당시 <남자와 식모>로 수정됐다)엔 뜨개질과 바느질을 좋아하는 근육질의 남성 구씨가 나온다. 시골에서 상경해 회사에 취직한 구씨는 여성적 면모 때문에 사장에게 해고된다. 생계를 위해 여성으로 변장하고 기생이 된 구씨는 손님으로 온 사장과 마주친다. <남자 기생> <남자 식모> 등의 작품들은 심우섭 감독, 구봉서 주연으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심 감독은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복장 전환, 성역할 전도, 동성애와 같은 퀴어 모티브로 남성의 성적 무기력 등 다양한 성에 관한 주제를 다뤘다.

박정희 정권 아래 퀴어적 요소를 포함한 영화가 상영되고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점은 놀랍다. 박정희는 검열과 보조금을 통해 영화를 국가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 삼았다. 남성은 ‘산업 역군’, 여성은 ‘주부’로 재현하며 현대적 핵가족 모델을 선전하는 ‘가족계획 영화’ 같은 영화들이 제작됐다. <남자 기생>도 구씨가 규범적 젠더로 돌아오며, ‘가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구씨의 드래그와 사장의 동성 간 욕망은 관객에게 강렬한 즐거움을 제공하며 젠더와 가족에 대한 보수적 규범들을 전복시킨다.” 젠더 규범의 전복과 회복 사이를 진동하며 ‘젠더트러블’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김조광수씨와 김승환씨의 결혼식은 ‘한국 최초의 동성 결혼’으로 보도됐지만, 이전에도 동성결혼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조광수씨와 김승환씨의 결혼식은 ‘한국 최초의 동성 결혼’으로 보도됐지만, 이전에도 동성결혼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첫 동성결혼은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1950년대 이후 노동계급 여성 ‘동성결혼’ 이어져
‘보갈’에서 ‘이반’, ‘신자유주의 게이’로…
혐오와 신자유주의 압력 속에 살아가는 한국 퀴어들

한국의 첫 동성결혼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다수는 2013년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파트너 김승환의 결혼식을 떠올릴 것이다. 언론들은 ‘한국 최초 동성결혼’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2004년 한 레즈비언 여성이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전 여자 친구를 고소했다. 법원은 레즈비언 커플의 재산 분할에 대한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장은 이들의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민결합을 옹호했다. 훨씬 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도 ‘동성 결혼’ 소식을 신문이나 주간지 한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편저자 헨리는 한국 노동계급 여성들 사이의 동성결합은 역사가 오래됐다고 말한다.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남성들이 사망해 이성애가부장제가 위기를 맞으면서 당시 주간지 등에서는 여성 간의 결혼식을 일상적으로 다룬다. ‘치정극’이나 범죄처럼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 이들이 사회적 자원 부족으로 인해 겪은 경제적 어려움 등에 대해선 조명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주도의 가족생활 재건 노력의 일환”으로 소개된 비규범적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반면교사 삼을 ‘교훈담’이 되어 이성애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됐다고 분석한다.

1969년 12월 10일자 주간여성에 실린 동성 부부에 대한 사진. 기사는 “아내역(?)의 윤양(오른쪽)은 그들이 행복한 부부였다고 주장한다”고 서술했다. 산처럼 제공

1969년 12월 10일자 주간여성에 실린 동성 부부에 대한 사진. 기사는 “아내역(?)의 윤양(오른쪽)은 그들이 행복한 부부였다고 주장한다”고 서술했다. 산처럼 제공

조성배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한국 남성 동성애자들의 변화를 보갈, 이반, 신자유주의 게이라는 이름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동성애 담론이 전무하던 1970~1990년대 중반까지 종로를 중심으로 어둠 속에서 일시적인 파트너를 찾던 남성 동성애자들은 스스로를 ‘보갈’로 부른다. 이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이반’으로 자신들을 부르며 공동체성을 지닌 사회집단을 형성한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내몰리면서 이들은 공동체에서 이탈하며 자기개발과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게이’로 변화한다.

신라영 사회문화인류학자는 외환위기가 노동계급 레즈비언 여성들에게 더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또 남성적으로 꾸민 ‘부치’ 레즈비언이 동성애 혐오에 직면하며 다시 젠더규범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게 된 과정을 그리며 이를 ‘티부(티 나는 부치성) 피하기’로 설명한다.

밖에서 보면 더 선명해보이는 풍경이 있다. 한국 퀴어들의 삶이 그렇다. “한국 퀴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여성과 무슬림, 난민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침묵시키고, 말살하고, 심지어 위해를 가하려는 자경단 스타일의 난동꾼과 종교를 구실로 한 외국인혐오자의 위협이 증가하는 와중에 더해, 소비자주의와 원자화라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논리 아래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숨막히는 거대한 압력 속에서 그들은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친밀성과 노동, 쾌락의 공간을 구축하려고 노력해왔다.” <퀴어 코리아>는 ‘망각된 기억’을 복원해 거대한 압력에 균열을 내기 위한 학문적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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