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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생각] ‘퀴어’의 눈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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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23-02-23 10:37 조회2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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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발전주의 역사 속 비규범적 존재
주체의 경험에 초점 둔 LGBTI 연구

주변화된 존재들이 드러내는 체제 모순
신자유주의 시대 퀴어는 무엇을 말하나
한현모 감독의 영화 <질투>(1960)의 한 장면. <퀴어 코리아>는 ‘게이는 없다’ 신화를 깨뜨리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변화된 성적 주체들의 다양한 양태와 의미를 톺아본다. 한국영상자료원 자료. 산처럼 제공
한현모 감독의 영화 <질투>(1960)의 한 장면. <퀴어 코리아>는 ‘게이는 없다’ 신화를 깨뜨리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변화된 성적 주체들의 다양한 양태와 의미를 톺아본다. 한국영상자료원 자료. 산처럼 제공
퀴어 코리아
주변화된 성적 주체들의 한국 근현대사
토드 에이(A). 헨리 편저,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 옮김 l 산처럼 l 3만5000원
1990년대 말 한국어 공부차 한국에 왔던 역사학자 토드 헨리(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역사학과 교수)는 당시 “한국에는 동성애자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금세 그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노 게이 신화’(no gay myth)가 발화될 정도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퀴어 무지’의 배경에는 성소수자의 경험을 더욱 주변화시켰던 한국 사회의 고유한 맥락이 있다.토드 헨리가 엮고 다양한 학제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성수소자 연구자와 성소수자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의 모임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가 우리말로 옮긴 <퀴어 코리아>는 “한국 근대성의 비자유주의적 밑바닥”에서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와 젠더 변이의 실천이 어떻게 지속해서 무시되거나 잊혀왔는지” 톺아보는 책이다. 일제강점기와 후기 식민주의적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온 한국 사회에서 ‘규율할 수 없는’ 것들, 곧 ‘퀴어성’은 압도적인 규범성 아래에 짓눌려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규율할 수 없는 주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냈고, ‘정상성’을 강요하는 권력과 벌여온 이들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는 한반도의 모든 주민을 짓누르는 모순적인 구조에 대해 비판적 통찰을 제공한다. 듀크대에서 펴내는 ‘비뚤어진 근대성들’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됐다.
책에는 식민지 시기부터 최근까지 시대순으로 한국 사회의 퀴어성을 다루는 다양한 필자의 다양한 글들이 실렸는데, 토드 헨리가 쓴 서장에서 이들이 공유하는 어떤 방향성을 먼저 읽을 수 있다. 그동안 서유럽과 북미를 뿌리로 삼는 퀴어 연구는 원자화된 엘지비티아이(LGBTI) 개인의 권리 획득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의 자유주의 모델에 주로 기댔는데, 그 한계를 넘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체성들의 “역사적 힘과 반체제적 주체성”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시아 국가들에서 가족과 국가의 유독 압도적인 규정력은 자신의 지향을 유지하면서도 가족과의 유대를 유지하려는 다양한 실천들을 낳는 기제가 되며, 그 역동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퀴어 연구의 중요한 초점이 된다.1920년대 중반 조선의 여학교에서 동성 간 사랑이 유행했던 현상을 들여다본 ‘사랑을 문제화하기’(첸페이전)를 보자. ‘여류 명사’들이 잡지에서 여학교 시절 자신들의 경험을 후일담처럼 이야기할 정도로 당시 여학교에서 동성 간 사랑이 유행했고, 이는 때로 ‘동반 자살’이란 극단적인 형태로 끝을 맺곤 했다. 천페이전은 당시 식민지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추구된 근대성은 ‘개인의 해방’을 약속했으나, “지속가능하고 재생산적인 이성애” 말고는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짚어낸다. 사랑은 재생산이 가능한 미래를 약속(‘재생산 미래주의’, 리 에델만)하는 이성애에만 보편적이다. ‘예외’에는 동반 자살처럼 ‘불가능한 미래성’만 주어진다. 이 예외는 근대화 혹은 민족국가 건설의 걸림돌이 아니라, 재생산을 요구하는 지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희생양으로서의 타자다. 이를 뒤집으면, 예외적 존재들이 드러낸 퀴어성은 지배 권력의 억압이 어떤 것인지 사유하게 하는 대안적 실천이 된다.
이성애규범성을 앞세워 동성 부부의 사례와 사진을 실은 &lt;동아일보&gt; 1965년 4월2일치 신문. 산처럼 제공
이성애규범성을 앞세워 동성 부부의 사례와 사진을 실은 <동아일보> 1965년 4월2일치 신문. 산처럼 제공
동성 부부의 공개 결혼식 사진을 실은 &lt;주간한국&gt; 1970년 9월27일치 지면. 당시 언론은 동성 결혼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이성애규범적으로 ‘교훈’하는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퀴어를 착취”했다. 산처럼 제공
동성 부부의 공개 결혼식 사진을 실은 <주간한국> 1970년 9월27일치 지면. 당시 언론은 동성 결혼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이성애규범적으로 ‘교훈’하는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퀴어를 착취”했다. 산처럼 제공
비규범적 존재들의 형상은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 사이 동거·결혼 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1960년대 신문·잡지들은 끊임없이 ‘한국에서 처음’이라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관음증적 시선으로 이들을 팔아먹는 한편 존재해선 안 되는 이들의 필연적인 비극을 ‘교훈담’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온 사회에 이성애규범성을 훈육했다.(토드 헨리, ‘교훈담이 된 퀴어의 삶’) 이처럼 ‘후발 발전주의 시기’에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는 ‘어둠 속’에서 그 존재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고, “자기 가족이나 사회 전반에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의 게이들은 일단 자신을 다른 게이들 사이에서만이라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조성배, ‘한국 남성 동성애의 세 얼굴’) 이처럼 협소한 영역 속 일시적인 만남 아래 놓인 그들의 관계는 스스로를 ‘보갈’(갈보를 거꾸로 읽은 것)이라 부를 정도로 성적인 것으로만 환원되곤 했다. 변화는 1987년 민주화와 1993년 지구화 흐름, 곧 ‘자유주의’와 함께 찾아왔다. ‘일반’과 다르게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반’이란 용어 아래 동성애 공동체가 ‘양지’로 나와 새로운 시민성과 사회성을 제기한 것이다.
코미디언 구봉서가 여장한 기생으로 나오는 영화 &lt;남자(와) 기생&gt;(1968)의 홍보 포스터. 산처럼 제공
코미디언 구봉서가 여장한 기생으로 나오는 영화 <남자(와) 기생>(1968)의 홍보 포스터. 산처럼 제공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한 통치성은 비규범적 존재들에게 또다시 새로운 ‘얼굴’을 갖추도록 요구했다. 이성애 가족이 정동적·사회적·재정적 지원의 일차적 출처로서 중요해지며 “많은 게이들이 게이 공동체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혈연 가족의 이성애적 주름 속으로 접혀 들어갔다.” 비규범적 존재들 역시 ‘평범한 삶’을 위해 경제적·정동적 안전을 제공해주는 가족이나 결혼 같은 이성애 세계에 걸쳐 있게 된 것이다. 조성배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게이’라 명명한다. 젊은 퀴어 여성 집단에서 ‘부치’(남성적 레즈비언)를 차별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에 대한 연구(‘티부 피하기’, 신라영) 역시 이처럼 사회경제적인 불균형을 강화하는 통치성 아래에 비규범적 존재들이 ‘생존하려는’ 욕구와 전략적 선택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책 전체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계급과 인종에 기반을 둔 서구 유럽의 퀴어와 다른 한국 사회 ‘퀴어 코리아’의 실제 모습을 포착하고 그것의 역사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사유하는 태도로 보인다. ‘재생산 미래주의’를 앞세운 가족과 국가의 압도적인 규정성 아래에 한국 사회의 비규범적 존재들은 오랫동안 ‘가시성’을 추구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정상성을 요구하는 체제의 억압을 문제로 삼는 이들의 실천은 “분열적인 힘이나 내분의 전복으로 나타나기보다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역동과 그 사회와 문화를 드러내는 해석”을 요구하며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것이다.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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