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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일본 제국주의 만행…지하구조물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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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22-04-07 16:50 조회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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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쪽 끝의 수월봉은 유네스코가 세계 지질명소로 인증한 곳이다. 그런데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처럼 퇴적층이 아름다운 이곳의 화산 해안 절벽에 콘크리트로 구축한 동굴 진지가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 패전을 예감한 일본 제국이 어떻게든 본토를 사수하겠다며 제주도를 옥쇄(玉碎) 지역의 하나로 정한 끝에 구축한 것이다. 미군 진입에 대비해 자살특공용 보트와 탄약 등을 보관했다고 한다. 당연히 제주도에 이런 곳은 수월봉뿐이 아니다. 정반대편 동쪽 끝 성산일출봉에 18개, 제주도 정남쪽 황우지 해안에 12개, 제주도 남서쪽 가파도 해안 올레길 10코스인 송악산 해안에도 18개가 있다. 타원형 모양의 제주도 남쪽 절반을 일제가 만든 인공 동굴이 둘러싼 모양새다. 제주 특산 오름들의 수난은 더 심각하다. 전체 368개의 오름 가운데 약 120곳에 일본군 진지가 구축됐다고 한다. 책의 두 저자는 이렇게 쓴다. “덮을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 모두 다 거대한 눈물 구멍”이라고.

책은 그런 구멍들을 찾아다닌 기록이다. 국가 폭력이라는 주제를 끼워 넣어 여의도 지하벙커, 제주 4·3의 현장도 다뤘지만 대부분 일제의 태평양 전쟁이 야기한 흔적들이다. 오키나와의 일본군 지하 방공호, 전쟁 중추 대본영 이전을 위해 건설 중이던 나고야의 지하호, 악명 높은 나가사키 앞바다의 군함도, 후쿠오카현 지쿠호(筑豊)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각종 폐탄광 등을 훑었다. 망각의 역사 속에 매장됐던 지하 구조물들이라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언더그라운드’라고 했다.

저자들은 2014년부터 언더그라운드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2019년 DMZ 영화제에 출품했던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사진을 따고 글을 덧붙여 이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정보량이 많지는 않다. 그런 만큼 생생하고, 간결한 건 책의 자랑이다. 일제의 악행이 한눈에 들어오니, 두텁거나 장황한 텍스트에 비해 쉽게 감정이 끓어오른다. 저자들의 생각 역시 강렬한 텍스트와 이미지만큼이나 선명하고 알기 쉽다. 지울 수 있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는 기억함으로써만 치유된다.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역사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얘기다. 이런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현실의 한일 관계를 푸는 일이 ‘역사 정의’만으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착잡한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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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6일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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