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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지도 '진화의 등고선', 도시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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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5-10 00:00 조회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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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블랙의 '메트로폴리스-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BC 1250년 테라코타부터 인천 송도까지 세계 지도 166장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신적, 경제적, 정치적 힘의 중심인 도시는 지도 제작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었고, 지도 제작자들에게도 중요한 주제가 됐다."

영국 엑시터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정치·외교·군사 전문가인 제러미 블랙이 펴낸 '메트로폴리스-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는 하나의 작품이다.

지도와 도시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결 고리다. 황두진 건축가는 "군사학 권위자인 블랙은 이 책을 통해 지도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당대의 최신 기술과 결합해왔는지를 보여준다"면서 "문장은 명료하고 도판은 펄펄 살아 숨쉰다. 머리와 눈을 이처럼 동시에 즐겁게 하는 책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군사학 권위자가 펴낸 책을 건축가가 극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 '새로운 지평선, 새로운 세계' '제국의 시대' '혁신의 온상' '세계화의 시대' '프린트에서 픽셀로: 미래로' 등의 제목으로 세계의 역사와 지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그 시작은 기원전 125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성스러운 도시 니푸르를 그린 테라코타 조각이다. 현재 이라크 지역인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있었던 니푸르는 엔릴 신을 신봉하는 중심지였다. 니푸르 지도는 선과 선의 만남으로 정보를 기록한다.

성문을 표시한 부분에는 설형문자로 된 정보가 담겨 있다. 오래전의 지도는 점토판이나 대리석에 정보를 기록하는 형태로 지도를 완성했다. 파손 등의 이유로 파편화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한민국의 인천 송도는 친환경 도시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오늘날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조감도 형태의 그림을 통해 탄소 배출, 에너지 사용, 물질의 흐름과 리사이클링, 지속 가능한 도시 운영을 그려냈다.



블랙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담긴 세계 각 지역의 대도시 지도 166장을 토대로 작품을 완성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시대에 따라 지도의 의미와 형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의 콘셉트와는 다른 모습이다. 과거의 지도는 도화(圖畵) 형태로 전해지기도 했다. 북송 시대 중국 도시의 일상생활을 전한 '청명상하도'도 그중 하나다. 1126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청명상하도는 실크로드를 통해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는 시대상을 잘 그렸다. 낙타와 승려의 모습, 향 가게와 여인숙, 운송회사 등의 위치를 담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모습을 전한 '베네치아 조감도'는 르네상스 시대 판화 형태의 지도 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지도다. 야코포 데 바르바리가 만든 이 지도는 도시의 경관을 60개 구역으로 나눠 정확하게 표현했다. 1500년쯤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지도는 과학적인 접근방식과 기독교적인 상징주의가 교차하는 게 특징이다.

프란체스코 로렌초 로셀리의 '사슬지도(1490년)'는 이탈리아 피렌체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목판본이다. 거리의 광장은 물론이고 도심지역을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이런 기법은 세계 지도 역사상 첫 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성벽 근처에 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 교회 주위의 주택들, 강물과 강둑까지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요하네스 판 두테큄이 1648년 제작한 네덜란드 17개주 지도는 국가를 사자로 형상화한 지도다. 스페인의 지배에 항거하는 네덜란드의 정체성을 반영하고자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토대로 지도를 완성한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존 파인이 동판에 새긴 '런던 웨스트민스터와 사우스워크 실측도'는 1746년 제작한 지도인데 5500개의 거리명과 지명을 수록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 18세기 대도시를 묘사한 현존하는 지도 중 가장 정확하고 상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교회는 꼼꼼하게 기록하고 산업시설은 설렁설렁(?) 기록하는 등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지도라는 점에서 한계도 있다.

부동산 중개인의 야심이 반영된 지도도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유력한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윌리엄 토머스는 1890년 휴대용 지도를 미국 전역에 보급했다. 휴스턴을 텍사스주의 중심으로 개발하려는 목적이 담겼다.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휴스턴의 모습을 오늘날의 지적도 형태로 지도에 담아 전하면서 미국 부동산 투자자를 유혹하려는 노림수가 담긴 선택이다.

지도는 사회상도 반영한다. 1885년 만들어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범죄 지도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철도 건설을 위해 중국인 노동자 이민을 권장했지만 1870년대부터 그들을 밀어내고자 차별적인 형태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관리들은 차이나타운 12개 블록의 모든 건물을 측량해서 부패와 범죄, 비위생 상태 등을 묘사했다. 예를 들어 분홍색은 도박업소, 노란색은 아편 업소, 초록색은 중국인 집창촌, 주황색은 중국인 일반거주지로 그렸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흥미로운 내용의 지도가 제작되기도 했다. 1937년 돈 보그스가 제작한 할리우드 스타랜드 지도는 여러 스타의 초상화를 싣고, 그들의 사연이 담긴 거리의 장소를 안내하는 내용이 담겼다. 흥미로운 세부 표현 중에서는 유명 배우의 애인이었던 인물이 '격렬한 파티 장소'로 이용했던 해변 저택을 표시한 내용도 있다.

이처럼 지도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정보가 취사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지도 제작은 기술 변천 과정에 따라 변화했다. 15세기 유럽에서 '인쇄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지도의 모습도 바뀌었다. 동판화와 석판인쇄 기술은 지도의 영속성과 내구성을 크게 개선했다.

지도의 모습과 느낌은 데이터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지도의 등장으로 다시 변화했다. 축적과 투사, 투시 방법을 달리할 수 있는 지도 제작이 가능해졌고 GPS를 지도 제작에 활용하기도 했다.

블랙이 지도와 도시의 결합 과정을 분해하고 재조명하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계사의 흐름을 지도라
는 매개체를 통해 전하면서 인류 역사에 대해 성찰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닐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도시는 희망과 꿈의 장소이자 비전과 질서의 장소이며 파괴와 갈등의 중심이다. … 문명은 환경을 장악하고 바꾸고 조직하려는 이들의 의식적인 노력 속에서 성장한다. … 도시는 인류문명의 진화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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