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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인종주의·제국주의 기원은? 저 ´잘난´ 기계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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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0:00 조회1,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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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술사학회의 덱스터 상을 수상한, 미국 럿거스 대학교수 마이클 에이더스의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 : 과학, 기술 그리고 서양 우위의 이데올로기(Machines as the Measure of Men : Science, Technology, and Ideologies of Western Dominance)>(김동광 옮김, 산처럼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유럽인들이 과학적
사고와 기술 혁신을 통해 성취한 자신의 물질문화가 세계바라보는 절대적 준거 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과학, 기술은 서양인의 ´비서양´에 대한 인종 우월 의식과 식민지 정책을 뒷받침하는 자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계몽주의, 인종주의, 제국주의 등의 지적 담론을 토대로 서양과 비서양을 구분하는 서양 우위의 지배 이데올로기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기존의 과학, 기술과 관련된 역사서 중에는 과학, 기술이
현대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개괄하거나, 과학, 기술을 오용한 인종주의, 제국주의가 불러온 참사를 폭로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 과학, 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데에는 공통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사회, 제도, 문화 등과 분리된 학문적 이론이나 기계에 관한 유용한 지식으로서, 과학이나 기술은 더 거시적인 사회 제도나 정책에 관련된 행위자들이 필요에 따라 동원 혹은 거부할 수도 있는 도구적 수단으로 간주하곤 했다.




▲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마이클 에이더스 지음, 김동광 옮김, 산처럼 펴냄).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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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에이더스는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에서 역사적으로 유럽인에게 과학,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준 그 자체로서 이 세계를 서양과 비서양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이들 관계를 문명/야만, 문화/자연, 이성/감정, 고등/열등, 진보/정체 등으로 규정했고, 특히 16세기 서양의 근대 과학혁명 이후 유럽인의 위계적 서열 의식은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준 물적 풍요와 여유 속에서 고착화됐다고 주장한다. 또, 비서양의 과학적 사고와 기술에 대한 유럽인의 평가가 정확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비서양에 대한 유럽인의 평가 기준과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이것이 시대별 서양의 지배 이데올로기 형성이나 정책 수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에이더스는 홀과 레이턴의 개념을 결합해, 과학은 지식 획득을 목표로 근본적인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기술은 좀 더 실제적이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에 실제적 통제를 가하려는 노력하는 것이라고 광의적으로 규정한 후, 근대 서양 과학, 기술이 시작된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영국프랑스의 중·상류층의 해외탐험가, 선교사, 사회이론가, 식민지 관리들이 남긴 1차 문헌과 이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와 기사,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중국, 인도의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의 인식과 태도를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유럽의 산업혁명 이전, 산업화 시대, 20세기, 이렇게 크게 세 시기로 유럽인의 비서양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변화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먼저, 산업혁명 이전, 아직 외국에 나간 유럽인 중 대다수가 자연계에 대한 서양인들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과학적 발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시절, 유럽인들은 우선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종교, 사회·정치
조직, 문화적 발달 수준으로 평가했고, 과학과 기술은 부차적인 수단 정도로만 이용했다고 한다.



이후, 17세기 후반 계몽주의 시대에 뉴턴 과학을 통한 광학,
역학, 수학 등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유럽의 귀족 출신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고취되면서, 유럽인들은 과학적 사고 능력으로 비서양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해외 식민지 정책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런 믿음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이 연장선 상에서, 18세기 유럽의 많은 지식인은 아프리카인의 과학적 사고 능력을 문제 삼으면서 노예 무역 폐지에 반대했다.



그러나 저자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과학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지식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와 사회에 적용할 정치 제도와 사회 구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면, 과학지식과 기술 발전과 무관하게 그 사회를 열등한 문명으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당시 유럽인들은 상급 관리가 부패, 무능력하고, 일반 국민들이 가난을 성토하던 중국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19세기 초, 산업화가 영국에서 유럽 전역으로 점차 확산되고, 수많은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과학 탐구와 기계력을 적용하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관점이 팽배해지면서, 유럽인들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무자비한´ 자연을 통제하는 인간 존재를 그 외의 자연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이 시기에 과학, 특히 기술이 주관적 편향에 가장 물들지 않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척도라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인간 문명은
금속나무, 기계 대 인간이나 동물의 힘, 과학 대 미신과 신화, 합성 대 유기, 진보 대 정체, 산업 사회와 산업화 이전 사회로 이분화됐다. 이런 인식은 비서양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문명화 사명(civilizing-mission) 이데올로기에도 투영돼서, 유럽인들은 서양의 기계를 아시아의 쇠퇴한 문명을 소생시키고 아프리카의 미개한 민족들을 향상시킬 핵심 요소로 간주했고, 진화론적 관점이 확산되던 19세기 중·후반에는 역으로 인종주의 관점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입증해 줄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했다.



마지막으로, 20세기와 관련해,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과학, 기술을 척도로 인간
가치를 판단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계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과 과학 탐구와 기술 혁신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현실 앞에서, 유럽인들은 이성에 대한 통제와 이성적 사고의 산물이 반드시 인류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에이더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례 없이 많은 과학, 기술이 동원되면서 생겨난 참호전에 대한 유럽인의 참혹한 경험에 주목했다.



그러나 에이더스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상대적으로 큰
피해입지 않은 미국이 과학과 기술을 토대로 근대화 이데올로기를 형성했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유럽인의 문명화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지위를 상실했지만, 그 속에 내재된 과학, 기술이 세계를 가늠하는 절대적 척도라는 서양인의 믿음 그 자체는 존속됐다고 말한다. 당시 미국은 합리적인 자원 관리, 과학과 기술을 적용한 대량 생산, 인간 행동 연구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시켜서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이룩했었다. 더욱이 양차 세계 대전 사이, 근대화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 혁신을 통한 기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형성되면서, 미국의 근대화론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양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에이더스는 이러한 시대별 과학, 기술과 서양 지배 이데올로기의 관계 분석을 토대로, 지금의 아프리카, 아시아의 과학기술 개발은
서유럽이 개척한 과학 산업 경로가 아닌,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과 같은 ´또 다른´ 제3의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비서양은 지난 500년간 서유럽에서 개발한 과학기술 방식으로는 서양 우위의 신식민 지배, 문화식민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할 수 없고, 막연한 반(anti) 과학기술주의 또한 적절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에이더스는 선진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성취, 잠재력, 인간 가치에 대한 과학과 기술과 같은 척도를 일방적으로 이전하는 대신, 과학기술이 도입될 지역 공동체의 요구나 생태적 제약에 맞추어 기술의 규모나 성격조율하는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에이더스의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는 과학, 기술이 세계를 인식하는 절대 기준치의 지위를 획득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접한 유럽인들의 비서양인에 대한 인식과 문화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변화했고, 과학, 기술이 서양
우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미친 영향을 시대별, 국가별로 잘 정리했다.



그러나 분석은 여기서 멈춘다. 유럽인들의 비서양인들에 대한 인식과 태도, 이들이 동원한 과학, 기술 척도가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았다. 물론 이 연구가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얻어진 결과이고, 저자 스스로도 이런 평가가 책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만약 이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조사했다면 보다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 책에서 중요 자료로 삼고 있는 1, 2차 문헌 중에는, 문헌에 언급된 논의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느 특정
개인의 생각만을 기술한 것인지 명확치 않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불문명한 자료 사용은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역사적 패턴의 현실성(reality)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물론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유럽인 저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보다 세심한 자료
선별 작업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한다. 더불어, 당시 노예 무역을 했거나 실제로 비서양인을 억압하고 지배했던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들이 연구에 좀 더 포함됐더라면, 보다 현실이 잘 반영된 연구가 됐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에이더스는 유럽인과 비서양인 사이에서 물질적 조건과 관찰에 영향을 준 문화적·이념적 환경이 복잡하게 교류하고 있고, 저자는
바로 이런 복잡한 교류 속에서 지난 500년간 유럽인의 비서양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애초 의도와 달리 전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병렬적으로 배치해 묘사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조아라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



**기사 링크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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