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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간안내] 비스마르크가 더 일찍, 노무현이 더 늦게 태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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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5-30 00:00 조회1,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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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맥밀런, '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

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

'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이렇게 강렬하게 묻고 있다.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문제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참여정부 5년을 회고하면서 했던 말 때문이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지만 별로 없다. 결국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흐름이 만들어져야,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룰 수 있다.'

마침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이 노 대통령 7주기 추도일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 열여섯 명 위에 노 대통령의 얼굴을 오버랩시키며 오래 품었던 질문의 답을 찾아보았다. 책은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어 술술 읽혔지만 다 읽고 나니 더 큰 질문이 생겼다.

역사가, 특히 페르낭 브로델 같은 주류의 역사가들은 사건의 이면을 관찰해 장기적 경향을 발견하는 것이 역사 연구의 진정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역사를 커다란 강으로 보았으며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나는 변화에 주목했다. 어떤 개인의 정치행위, 전쟁 같은 사건들은 그 강물 위에 잠시 일었다 꺼지는 거품이라 불렀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이 책의 저자 마거릿 맥밀런(Margaret MacMillan)은 그 '거품'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 국제관계 전문가답게 맥밀런은 다양한 사실과 분석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독자에게 설득하고 있다.

역사에서 금기시 하는 가정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나치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망명으로 내몰지 않았다면, 원자 폭탄이 없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됐을까?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도자였다면,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다면 구소련과 동유럽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 연방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 중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이라크는 어떻게 됐을까?

맥밀런은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시대에 갖다 놓아야 하고, 그들이 아직 발견되거나 분명해지지 않은 일들을 생각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맥밀런이 역사적 개인들을 살펴보는 렌즈는 두 가지다. 그들이 지닌 '자질'은 어떤 것인가? 그들이 지도자나 모험가가 되도록 만든 '환경'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이유를 귀납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방식으로 역사적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용기라는 특정한 자질을 살펴보고 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서른아홉 개로 흩어진 독일어 사용 국가들을 통일시킨 인물이다. 당시 통일 독일의 등장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비스마르크라는 개인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목격한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스마르크라는 개인적 '자질'이 어떤 '환경'을 만나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먼저 자질. 비스마르크는 겸손ㆍ독실ㆍ근면ㆍ자제ㆍ살신성인을 미덕으로 삼는 프로이센 융커(Junker, 보수적 토지 귀족) 출신이다. 한마디로 완고하고 답답한 문화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미친 융커'였다. 의무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대학에서 술과 도박에 빠졌다. 직장에선 게으르고, 농장을 경영할 때엔 기행으로 악명 높았다. 그의 인생은 1847년 프로이센 의원 하나가 갑자기 병에 걸려 의원직을 사퇴하는 사건으로 뒤바뀌었다. 그는 보궐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정치적 원칙을 아주 적게 지닌 사람'으로 급성장했다. 1862년 총리로 취임하면서 지지자를 얻어내고 반대파를 분열시키는데 능숙함을 보여줬다.

다음은 환경. 비스마르크의 행운은 당시 황제인 빌헬름 1세를 만난 것이다. 특별히 똑똑하거나 식견을 갖추지 않은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 밑에서 황제 노릇 해먹기 힘들다"고 불평했지만 그를 필요로 했다. 비스마르크는 황제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강력한 통일 독일 건설의 꿈을 향해 질주할 수 있었다. 자신의 뜻을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칭병과 사직으로 협박해 관철시켰다. 더구나 빌헬름 1세는 만 91세 가까이 장수를 누려 26년 동안 비스마르크를 지원해주었다.

당시 유럽은 '열려 있는 체스판'이었다. 프로이센은 상승세인 반면 경쟁자인 오스트리아는 민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며 쇠락했다. 러시아는 크림전쟁 이후 움츠러들었고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고 있던 프랑스는 프로이센의 도전을 감지하지 못했다. 영국은 유럽 대륙보다 해외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관심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의심할 바 없는 재능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와 환경에 태어난 행운을 누렸다. 만약 그가 지주 가운에서 좀 더 일찍 태어났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왕국 군대의 평범한 장교나 관료가 되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비스마르크 못지않게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용기라는 특정한 자질'을 가졌던 정치인이다. 그러나 집권 기간 내내 자유주의자는 물론이고 노동계급, 진보세력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부여받은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종종 진영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빌헬름 1세와 같은 후견인 대신 적대적인 정치, 언론 환경과 싸워야 했다. 당시 한반도는 '닫힌 체스판'이었다. 6자 회담의 당사국은 제각각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빴고 북한의 핵실험이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기저에서부터 허물었다.

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분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만들었지만 그의 목표는 미완성으로 남았고 '실패한 대통령'이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노 대통령은 '대통령 한 사람'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는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에 대해선 맥밀런의 얘기를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의심할 바 없는 재능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와 환경에 태어난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만약 그가 좀 더 나중에 태어났다면,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책을 닫으며 그것이 궁금해졌다. 백승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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