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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산업혁명 이래 기계는 인종 우열의 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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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0:00 조회1,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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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사용할 능력 없다" 中천문학 등 문화 폄하


유럽·백인 우월주의 싹터


"아프리카에서 휴식을 끝내고 돌아온 후 내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한 것은 관습이나 예의범절, 주택이나 기후가 아니라 거대한 철도 기관으로 표현된 무엇이었다. 언젠가 7년이나 남서아프리카에서 지냈던 한 남자와 같은 배를 타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는 리버풀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그곳 관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것은 내가 마주친 기계류의 장대함에 대해 처음 느꼈던 복받치는 감정이었다. 우리 인종의 우월성의 표현이었다."


19세기 아프리카에 우호적이었던 영국 작가이자 탐험가인 메리 킹즐리(1862~1900)가 이렇게 표현했듯이 제국주의 시절 유럽인들은 유럽 이외의 지역과 비교해 자신들이 이룬 과학과 기술의 우월성을 확신했다.


인류 역사에서 지난 수백 년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비교의 척도는 바로 과학과 기술의 성취 정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계였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외모나 재산, 지위, 학력 등이 비교의 기준이지만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는 어떤 기계를 만들고 사용하는지가 진보와 발전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에이더스가 쓴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는 유럽인들이 과학적 사고와 기술 혁신에서 나타난 우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것이 비서양인들에 대한 태도와 그들과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힌 연구서다.


저자는 1740년대 영국의 지질학자 윌리엄 스미스가 아프리카 감비아강 어귀의 백사장에서 거리를 측량할 때의 에피소드로 책을 시작한다. 노예가 바퀴 달린 주행거리계로 백사장을 따라 거리를 측량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피하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들은 바퀴에 겁을 먹었고 자신들에게 마술을 걸려는 것으로 믿었다.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장난을 치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스미스 일행은 무기를 발사하며 쫓아 버렸다.


이 에피소드에서 암시하듯이 저자는 수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이 과학과 기술이라는 척도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외부 세계를 평가해 온 과정을 그 당시의 대표적 탐험가, 여행자, 선교사, 학자, 식민지 관리 등이 남긴 풍부한 문헌을 검토해 복원하고 있다. 대탐험시대, 계몽주의 시대, 산업화, 그리고 20세기 전반까지 각 시대별 특징도 알 수 있다.


초기만 해도 유럽의 여행자와 선교사들은 종교를 비롯해 신체적 모습, 도시, 토목공사, 군대, 의복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점차 자신들이 사용하는 기계와 도구가 우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가령 중세 유럽에서는 부정확한 역법과 수도원 일상을 통제할 필요성 때문에 시계가 발달했고 15, 16세기 도시에서는 시간 관념이 시계에 맞춰 완전히 바뀌어졌다. 그러나 유럽 여행자들은 시간 측정 장치가 그만큼 발달하지 않은 해외에서 시간 관념이 전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중국 황제나 고위 관료들이 선물로 준 서양 시계를 사용하거나 수리할 능력이 없다고 불평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계몽주의시대에 과학 기술이 평가의 척도로 중시되면서 다른 문명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천문학과 의학의 후진성, 화약 나침반 등의 발명품들이 지닌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인식되면서 중국 문명 전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철학자 군주가 다스리는 유토피아 사회라는 초기의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다.


유럽 사회에서 기계가 인류를 비교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로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이 결정적 계기였다. 직물 생산과 무역에서 인도가 누리던 우위가 산업혁명으로 무너지고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인도 문명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하락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과학적 탐구와 독창적 발명 능력의 결여로 인도의 발전이 극히 낮은 수준으로 정체했고, 인간 노력의 중요한 영역에서 좀 더 숙달된 민족의 정복과 지배를 받게 됐다고 썼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들이 유럽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백인의 인종적 패권주의, 비유럽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식민지 교육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철도 증기선 기계류를 아시아의 ´쇠퇴한´ 문명을 소생시키고, 아프리카의 ´미개한´ 민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로 여겼다.


1차 세계대전의 참화는 유럽 과학 기술 문명의 허구를 드러냈고, 과학과 기술의 지위는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패권을 이어받은 미국의 근대화 패러다임에 힘입어 과학과 기술이란 척도는 다시 되살아났다. 저자는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주장하는 근대화 패러다임의 핵심에는 과학과 기술이란 척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구한말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이후 100여년간 서구 문명을 추종해 온 한국 사회도 이런 척도를 내재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한다.



**기사 링크
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01/h20110128210436842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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