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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인문학자가 바라본 중세 죽음의 여덟 가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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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12 10:01 조회1,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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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죽음>

서울대학교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지음
산처럼·1만5000원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 그가 쓴 ‘황무지(The Waste Land)’는 어려운 시다. 무식하면 이해 못한다. 그리스-로만 클래식과 중세, 르네상스를 모르고 이 시를 읽기는 불가능하다. 에즈라 파운드의 시집 『칸토스(Cantos)』도 마찬가지다.

‘황무지’를 읽기 위한 지성의 기초체력을 쌓는 일은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 나온 줄리아 로버츠가 금세 배운 식사예절과는 달라서, 정말로 쉽지 않다. 엘리엇은 ‘황무지’의 첫 줄부터 단단한 벽을 쌓아 독자의 앞을 가로막는다. 독자는 대부분 여기서 기가 팍 질려서 해설서를 찾는다.

“나도 한 번은 쿠마에서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하고 묻자 무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녀(Sybil)에게는 앞날을 점치는 힘이 있다. 특히 쿠마의 무녀는 유명했다. 그는 아폴로 신으로부터 손에 든 먼지만큼 여러 해를 살 수 있는 수명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젊음도 함께 달라는 청을 잊었기에 쪼그라든 채 조롱 속에 들어가 구경거리가 된다.

무녀에게는 희망이 있다. 모래시계를 채운 먼지는 언젠가 모두 흘러내릴 것이다. 그는 “죽고 싶다”는 소원을 이룰 것이다. 물론 마지막 순간 죽음을 대면하고 공포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죽음이 반갑든 두렵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마주본다. 탄생 과정 자체가 죽음의 위험을 동반한다. 성장기는 죽을 확률이 높은 시기다. 인간 가운데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 필연적이고도 보편적인 현상이 지극히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는 데 삶과 죽음의 신비가 있다.

“모든 사회,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이 다른 만큼 죽음의 방식도 다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곧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도 다르지 않다.” - 서울대학교중세르네상스연구소는 첫 번째 공동 연구의 주제로 죽음을 택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도서출판 '산처럼'이 펴낸 『중세의 죽음』은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쓴 책이다. 문학, 철학, 역사학, 예술, 미술사 연구자 여덟 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중세의 죽음’을 연구함으로써 유럽 문명 내면에 존재하는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자 했다.

학자들은 ‘참혹하면서도 따뜻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정치적인’ 중세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죽음의 풍경을 흥미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유럽 중세의 죽음에 직면한다. 『중세의 죽음』은 학자들과 동행하기 위한 가이드북인 동시에 자유여행을 위한 네비게이터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역사와 철학 분야의 글 네 편으로 구성했다. 중세 ‘죽음의 춤’에 대한 분석, 연옥이라는 '제3의 장소'의 탄생, 미술의 주제로 등장하는 예수의 죽음, 죽음에 대한 12세기 유럽의 철학적 담론 등을 다루었다.

2부는 문학 분야다. 아서왕의 죽음, 귀네비어와 란슬롯, 햄릿의 죽음, 돈키호테의 죽음 등을 다룬다. 저자들은 “중세는 그냥 흘러가 버린 먼 과거가 아니라 근대 세계를 잉태한 시공간이고,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여는 태초와 같다”고 했다.

<서울대학교중세르네상스연구소 지음/산처럼/1만5000원>

허진석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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