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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과학 좀 안다’는 우월감이 제국주의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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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0:00 조회1,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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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기계문명 발달 정도가 인간에 대한 ´척도´로 작용… ´非유럽 문명화´야망 불러

서구의 우월주의 思考는 16~17C ´과학혁명´서 비롯





아프리카 감비아 강어귀의 ´어리석은´ 원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영국 지질학자 윌리엄 스미스의 흰 피부색이나 기독교가 아니라, 그가 가져온 주행거리계(計)에 붙어 있는 작은 바퀴였다. 낯선 이방인이 기묘하게 생긴 바퀴로 자신들에게 마술을 걸려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전사(戰士)들은 소들을 멀리 물리고, 아녀자들을 숲에 숨기고 나서야 겨우 이방인을 ´잔인하게 갈가리 찢어버릴 것´처럼 해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바퀴에 대한 두려움은 감출 수가 없었다.


뛰어난 선박 건조 기술과 항해술을 앞세워 ´바깥세상´에 대한 대탐험에 나섰던 유럽인들을 우쭐하게 만든 것은 기후나 지리적 특성, 문화적 차이, 인종이나 민족적 우월감이 아니었다. 19세기까지도 유럽인들에게는 ´인종´과 ´민족´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에게 정말로 우월감을 느끼게 해준 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제공해 준 과학적 사고와 기술혁신이었다.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에이더스가 수많은 탐험가, 선교사, 식민지 행정가, 문학가, 철학자들이 남긴 방대한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적은 책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에 따르면 그렇다.


아프리카·인도·중국 등 비(非)유럽 지역으로 탐험에 나선 유럽인들이 당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종교·사회·정치조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과의 문화적 비교에 필요한 척도는 그런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척도에서 유럽인들이 처음부터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만난 ´무지한 야만인´들의 모습은 혼란스럽고 우스꽝스러웠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배에 남아 있던 다른 신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여흥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점차 자신들이 그들과 문화적·물질적·정신적으로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와 기술혁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종이, 무기, 철도, 선박, 장거리 항해용 기구, 증기기관에서 수학, 천문학, 의학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는 ´기계´가 인간의 수준을 평가하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척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의 정복, 시간과 공간 지각에 대한 인식, 노동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격차도 모두 근원적으로는 자신들만 가지고 있는 기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런 평가 척도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자신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인도와 중국도 오랜 침체기를 거치면서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뒤떨어져 버렸다.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계몽주의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제국주의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후진적이고 미신에 사로잡힌 비서양 세계의 사람들을 ´문명화´시켜 효율적이고 호혜적인 전 지구적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믿기 시작했다. 서양의 기계를 이용해서 아시아의 ´쇠퇴한´ 문명을 되살리고, 아프리카의 ´미개한´ 인종을 향상시켜야 했다. 강력한 식민지 교육을 비롯한 유럽의 문명화 노력도 기계를 척도로 새롭게 평가됐다.


기계에 의존한 유럽인들의 비교 척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세계의 패권 구도가 바뀌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이 유럽인들의 자신감에 상처를 주었고, 기계화된 대량살상은 ´문명화 사명´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유럽의 뒤를 이은 미국이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내놓은 ´근대화´ 패러다임도 역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가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적정한 기술의 탐색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인간을 평가하는 새로운 척도를 제공한 과학과 기술은 17세기의 ´과학혁명´을 통해 등장했다. 혁명은 특정한 한 가지 방식을 폐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학사의 권위자인 미국 코넬대 피터 디어 교수는 ´과학혁명: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에서 이 시기 유럽에서 일어난 거대한 지적·문화적 전환의 핵심은 자연에 대한 의문을 ´왜´에서 ´어떻게´로 변환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한 ´관조적 삶´이 자연을 실용적 목적으로 통제하고 활용하는 ´실천적 삶´으로 전환됐다.


코페르니쿠스·케플러·갈릴레이로 이어지는 16세기의 변화는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기보다 ´과학적 르네상스´에 불과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새로운 천문학이 프톨레마이오스의 고대 천문학이 남긴 유산을 계승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은 여전히 신학과 철학에 종속되어 있었고, 신(神)의 의도를 이해하고, 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였다.


하지만 17세기의 과학혁명은 이와 달랐다. 과거 전통을 복원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철학은 잘못 구상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험´을 통해 자연에 대한 본질적 지식의 수준을 넘어 실제로 인류 복지 증진에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 가치를 가진 조작적 지식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변화된 과학이 실용적인 기술과 손을 잡으면서 현대의 물질문명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런 기술에 의한 진보가 이제 진지한 성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인간의 정신적·윤리적 진보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공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첨단기술의 미래를 살펴본 ´기술의 영혼´(에도아르도 본치넬리 지음, 김현주 옮김, 바이북스, 2011)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기사 링크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28/2011012802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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