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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미니북] 주경철 ˝나는 왜 역사의 바다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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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3 00:00 조회1,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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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주경철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복될 수가 없어요. 반복된다면 예측이 가능할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 못 하는 거지요. 다만 지난 역사 경험을 들여다보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고 사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남들보다 감을 더 잘 잡든지 혹은 약간 실수를 덜 하는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가는 예측이 아니라 해석을 할 뿐입니다. 그런 경험이 다른 전문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역사가의 영역이고... 지정학적 향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제 역사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활동적 지식인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역사가 역시 가끔은 피끓는 애국열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사실 저도 우국충정 그득한 애국자이거든요.”



“아무도 모르겠지만 피에르 쟈냉(Pierre Jeannin)이라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유럽 거의 모든 언어로 원사료를 꼼꼼하게 읽고 바위처럼 단단한 논문들을 쓰기로 (학술지 편집자들 사이에) 유명했습니다. 그 분이 제 지도교수였습니다. 어찌나 엄한지 지금도 일 잘 안 풀리면 그 분이 꿈에 나와 뭐라고 야단치시는데 이런 악몽을 꾸고 나면 깰 때 좀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보고 그런 식으로 살라고 했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또 오실까 두렵군요. 워낙 세상에 좋은 역사가들이 많아 이런 분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눈에 안 띄더라도 탁월한 성과들을 누적해 가는 역사가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는 “말보다 글로 하자”고 했다. 역사학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평생 사료를 찾아 읽고 해석하고 기록을 남기는 데 단련된 사람 아닌가. 주경철(55)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얘기다. 어느 곳에선가 그는 역사, 역사학, 역사가를 두고 “인간의 내밀한 심층에 대해 살펴보고 사회에 대해 해석해 주는 우리 정신의 무당 같은 존재”(‘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서문)라고 한 적이 있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신간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산처럼)를 보고, 이 타고난 무당의 내밀한 심층은 어떤 것인지 헤엄쳐 들어가보기로 했다.





[미니북] 주경철
그가 바란 대로 이메일로 문답을 먼저 주고받은 후, 만나서 사진도 찍고 대화로 보완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니까 아래 인터뷰는 서면으로 오간 내용과 직접 만나 대화한 것을 합치고 다듬은 것이다. 낮춤말로 오간 이메일의 답변은 무척이나 경쾌했는데, 경어체로 바꿔놓고 보니 그때의 글맛(북유럽 소설가를 연상시키는 유머가 섞인 말투가 주는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그 점은 아쉽다. 그만큼 그는 진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이야기 방식에도 능하고 근접해 있는 학자군에 속한다.



-철든 후의 지적(知的) 여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학부는 경제학과였는데 서양사로 옮기셨지요?



입학할 때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한 일입니다. 성적을 맞춰 간 결과이고 부모님 바라시는 데에 따른 측면이 다분합니다. 그런데 학과 공부를 막상 시작해 보니 제가 이 쪽에는 큰 소질이 없고 흥미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수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 하지도 못 하고 흥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과목을 듣다가 역사학이 제게는 훨씬 구미가 당긴다고 느꼈습니다. 역시나 나는 말로 풀고 글로 쓰는 게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났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거 참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하는 게 최선입니다.



[미니북] 주경철

-대학 때 데모하다가 잡혀서 징계도 당했습니다. 그때는 어떤 생각에서였나요? 지금은 이른바 보수 신문에 칼럼도 씁니다. 그 사이 생각에 변화가 있나요?



1970-80년대에 극단적인 생각을 안 해본 대학생은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유신 정부와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이런 정권에 항의하는 것은 따로 증명이 필요없는 공리에 속하는 일이지요. 다만 데모를 하다가 잡히고 학교에서 ‘짤리는’ 정도까지 나가느냐 하는 것은 좀 별개인데, 평소 너무나도 조용했던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달려 나갔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입니다.



지금은 소위 보수 신문에도 쓰고, 소위 진보 신문에도 씁니다. 저는 사실 보수 진보 운운하는 그런 식의 구분을 소름 돋게 싫어하고, 그런 천박한 기준으로 사람 판단하는 걸 혐오합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양쪽 모두에 글을 쓰는 게 나의 드넓은 기상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후배들이 저를 보수에 편드는 인간으로 치고 아주 안타깝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곰곰 생각해 보니 제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달리 실제의 나는 요즘 ‘정치적’ 기준에서 보수에 가까운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니 진보니 가르는 기준이 19세기적이고 올드(old)한 것이라서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저는 전혀 별개의 기준에서 아주아주 진보적이고자 합니다.



-별개의 기준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그 꿈을 어떻게 그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진보 인사들의 꿈(혹은 전망)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게 너무 희미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저 역시 명료하고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노동계급이 투쟁에서 승리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는 식의 투박한 스토리가 아니라, 모두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자아를 실현하여 행복함을 느끼고,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을 갖추고, 정서적으로 충일한 느낌을 갖도록 사는 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삶을 예술처럼 사는 곳이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학생들에게 ‘최초의 기억’이 뭔지 묻는다고 하더군요.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말이지요. 선생님 자신은 어떤 기억이 떠오르나요?



정처 없이 걸어가는 것! 근데 그건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어릴 적 저를 돈암동에서 잃어버렸는데 광교에서 발견되어 미아보호소에서 낮잠을 자다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미니북] 주경철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바라던 곳에 와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히 잘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었던 것은 교수나 교사였으니까요.



-번역을 포함해 저술량이 상당합니다. 그 동안 몇 권이나 내셨지요?



따로 세어보지 않았는데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니 스무 권이 넘는 것 같군요. 대중용 풀어쓰기 책과 전문 서적이 반반 정도 되는 듯합니다.



-일과 중 상당 부분이 읽기와 쓰기일 것 같습니다. 일과 수칙이 있나요?



‘Eile mit Weile(여유를 가지고 서둘러라)’라는 우아한 수칙이 있었는데, 요즘 주변에서 하도 여러 종류의 잡다한 일들을 시켜서, 말하자면 ‘투구 밸런스’가 깨져 슬럼프에 빠진 상태입니다. 최근에 여유를 가지고 게으르게 살아갔는데, 방학 때 다시 원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학술서 외에도 대중적인 글도 많이 쓰시고 책으로도 묶어 냈습니다. 반면에 교수들 중에는 연구나 학술서에만 매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글쓰기와 저술에 관한 나름의 원칙이나 철학이 있나요?



원칙과 철학을 따지기 전에 숙제가 너무 많아서 그거 처리 처분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번역도 부탁받고, 여러 사람 함께 하자고 하면 쫄랑 좇아가고, 토막 글 쓴 거 모아보자고 하면 그렇게 하고, 도대체 내 생각대로 할 여지가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일부 책들, 예컨대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특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같은 책들은 내가 쓰고 싶어서 기획했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칙이나 철학이라기보다 ‘요령’만 있는 셈인데, 그건 대학원에서 교육하고, 그 내용이 소화되면 학부 교양 과목에서 교육하고, 거기에서 또 소화되면 글로 쓰기, 이런 식입니다.



[미니북] 주경철

-올 상반기 인문학 책이 소설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요즘 인문학 열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이비가 너무 판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인문학자들은 동냥하고 다니고 있고, 사회는 인문학자들을 악용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제가 정년 퇴임할 즈음 인문학이 완전 결딴나는 꼴을 보고 은퇴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도 듭니다. 남이 도와주는 ‘열기’에 기대기 전에 인문학이 스스로 갱신해서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고고한 척하면서 어느 한 옛날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든지, 진보적인 척하면서 허황한 이데올로기의 ‘슈퍼 전파자’가 되고 있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도 눈을 떠서 그런 내용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 역사는 주로 학교 수업이나 교과서를 통해 알았습니다. 이제는 TV 퓨전사극, 영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접합니다. 지식인으로서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만 그런 게 아니라 여태 계속 그래왔습니다. 리처드 3세에 대한 영국인들의 인식은 셰익스피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폴레옹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은 톨스토이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대중들의 역사 ‘인식’은 넓은 의미의 문학에 의해 지배됩니다. 요즘은 그게 사극과 영화로 더 확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때로 너무 왜곡되고 정치적 영향 하에 들어가고 흔히는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전문 역사가들의 ‘연구’가 그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전문 연구자들의 노력과 일반인들의 역사 인식, 양자가 다 튼튼하고 동시에 서로 교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양자가 다 부실하고 양자간 관계도 미약해 보입니다.



[미니북] 주경철
-서양사학자이면서 대중 교양 역사서도 많이 써오셨습니다. 그런 중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일본의 역사 교양서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를 강하게 비판하신 적이 있지요? (주 교수는 신입생들이 감명깊게 읽은 역사서로 ‘로마인 이야기’를 손꼽은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어떤 책인지 꼼꼼히 리뷰한 적이 있다.)



역사서의 경우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인 것과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주는 경우, 이 두 가지로 크게 나뉩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경우 후자의 영역이 크게 발달해 있는데, 시오노 나나미도 그 분야 저자에 해당합니다. 이런 사람도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습니다. 박사 학위가 있고, 거기서 출발해 글을 잘 쓰든지 해서 독자를 확보하는 식으로 갑니다.



하지만 우리 경우에는 전문 영역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중 역사서 작가 영역이 부재하다시피했어요. 그 틈새를 시오노 나나미가 때맞춰 들어와서 아주 매력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거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로서는 비판적 안목이 미처 갖춰지기 전에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돌풍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빠져들어 굉장히 좋게 받아들여졌는데, 전문 역사가 입장에서 보자면 헛점도 많습니다.



그분이 글을 유려하고 재미있게 쓰는데 그 재미있는 부분들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해석하기 어렵거나 자기 생각과 맞지 않을 때는 짐짓 격언조로 ‘남자는 이런 법이다’ ‘지배자는 이런 법’이라는 식으로 풀어 넘깁니다. 멋있어 보이긴 하는데 그런 부분이 대개는 증거 부족인 경우입니다. 증거가 부족할 때 오히려 화려한 언사를 통해 비약을 해버리곤 하지요.



전문 연구자들이 그렇게 멋있게 못 쓰는 것은 필력 탓도 없지 않겠지만, 실제로는 사실 관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증거가 없는데 단정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반면 시오노 나나미 같은 저자는 그런 꼼꼼함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지식을 보기 좋게 이야기로 엮는 과정에서 도약해서 상상도 해보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하니 멋있어 보일 수밖에요.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부실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그 부실함을 문학적 표현으로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게 결코 중립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일본 극우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거기서 사관의 문제가 제기되는 거지요. 제가 볼 때는 일본 여류 작가가 필생의 업적으로 로마를 연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기 생각에 로마를 일본의 근원으로서 찾고 있는 거지요.



과도한 일반화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자신들이 또다른 유럽이라는 기묘한 사상 같은 게 있습니다. 원류로서 유럽사가 있고 원류의 원류로서 로마제국이 있는데 그 로마가 붕괴된 후 되살리려 했던 게 르네상스이고, 그걸 이어받아 크게 발전시킨 것이 대영제국, 그 영향을 받은 게 일본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런 것이 시오노 나나미에게 영향을 준 계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가 로마를 묘사하는 것을 보면 강력한 지배 체제에 의한 식민지적인 제국 지배를 굉장히 미화합니다.



-대동아공영권의 논리가 떠오르는군요.



그것과 일대일 대응하는 것은 위험할지 모르겠지만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는 일제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글을 써서 구설에 올랐지요.



그런 게 로마를 이야기할 때는 얼른 드러나지 않지만 시사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곧바로 드러나지요. 사람들이 그의 위안부 발언 나왔을 때 “실망했다” “그럴 줄 몰랐다”고들 했는데 “그럴 줄 몰랐다”는 게 잘못이지요. 극우의 논리로 로마제국을 보고 비교했는데.



[미니북] 주경철
-선생님의 주저는 여전히 ‘대항해 시대’로 봐야 하나요? 그 뒤에 다른 책들도 나왔습니다만.



지금까지는 ‘대항해 시대’가 주저입니다. 빨리 다음 책을 써서 주저를 다른 것으로 대고 싶군요.



-또 다른 역저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 한 인물을 집중 조명한 책으로는 유일한데요 어떻게 쓰시게 되셨죠?



‘대항해 시대’를 낼 때 연구를 하면서 여러 영역을 다뤘어요. 각각의 영역이 독자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는 점에도 주목했지요. 군사 문제가 화폐와 연결되고 화폐는 또 다른 문제와 연결되는 식으로. 그 중 하나 빠진 게 바로 심성이었습니다.



물질 측면만이 아니라, 도대체 당시 유럽인이 밖으로 팽창해 나갈 때 그 밑에 깔린 심성은 뭘까 궁금했지요. 그것에 대해서도 약간의 연구를 진행하다가 별개의 장(章)으로 하기엔 모자라서 남겨뒀는데, 보충 작업으로 유럽 팽창의 심성 이걸로 출발했다가 콜럼버스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발견한 겁니다.



알고 보면 콜럼버스라는 사람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종교적인 인물라는 거예요. 당시 유럽이 대외적으로 어떻게 그토록 공격적이었던가 하는 심성에 대한 해명과도 맥이 닿는 것 같았어요. 이것만 별개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었던 거지요.



[미니북] 주경철
-상업적인 동기에서 출항한 세속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게 미묘해요. 세속적인 것과 거의 수도사적 신비주의 요소가 함께 있어요.



-흔히 근대 유럽의 팽창을 설명할 때 종교적 이유도 같이 이야기하지 않나요. 군인과 상인과 선교사가 함께 들어갔다고 말이지요.



그 이전에 유럽인들이 갖고 있던 집단적인 의식 혹은 무의식 차원의 공격적 심성의 흐름 속에 콜럼버스가 있었다는 것이 저의 초점입니다. 당시에도 어느 문명이나 밖으로 나갈 개연성은 다 있었는데 왜 하필 유럽에서 돌파가 이뤄졌나. 왜 죽음을 무릅쓰고까지 밖으로 나가려 했던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요. 돈을 벌려고 나갔다? 그런 필요성은 어디나 다 있었어요.



그보다 더 강렬한 어떤 무엇이 있었고, 그것이 종교사적 의미에서 해석 가능하다는 거지요. 콜럼버스의 견지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로 반드시 가야 하는, 인류 구원 차원의 아시아 여행이었지요. 이런 게 중세말 근대초 유럽 문명의 역동적인 심성이었다는 겁니다.



-박사 학위 논문부터가 서유럽과 동유럽의 무역이었지요. 지금도 문명 교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무역과 교류가 제가 생각하는 큰 틀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전쟁 아니면 전도 아니면 교역이다. 막연하지만 문화와 경제 사이의 관계의 역사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역사학 개론 같은 것을 보면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앞세운 쪽과 ‘해석된 역사(사관)’를 강조하는 쪽이 대립해온 것 같습니다. 객관주의 대 주관주의, 실증주의 대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나뉘기도 합니다. 어느 입장에 가까운 편인가요? 요즘 학계의 견해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사학 개론에서 말하는 게 정말 맞다는 것을 박사 논문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구해 그 토대 위에서 쓰려고 하지만 그런 것으로 줄거리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의외로 문학적 측면이 강합니다. ‘history’ 가 곧 ‘story’입니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는 건 세상에 없다, 해석된 역사라는 게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두고 양자가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오류가 시작됩니다. 최대한 많은 사실을 확보해야 상상이 가능한 겁니다. 제 책 중 가장 잘 지은 제목이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인데, 역사는 상상된 기억이고 기억이란 과거에 대한 매우 꼼꼼한 상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니북] 주경철

-한국 근현대사를 두고 학자들 간에도 좌우 대립이 심합니다. 학교 교육에까지 갈등이 번지곤 합니다. 역사는 현재 권력의 투쟁사라는 말도 합니다만, 외국 학계도 그런가요? 서양사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 논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연히 외국에서도 역사 해석을 두고 심하게 다툽니다. 다만 다투는 양상이 진지하고도 의연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다투는 양상은 수준이 낮습니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짜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문제인데, 그건 공부해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먼저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후 그것을 학문적으로 포장하려는 경향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최근 학계나 출판계를 보면, 서양의 우위는 우연적이거나 한시적인 것이었고 이제 동양 혹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런 견해에 동의합니다. 초장기의 역사에서 보면 서구의 지배적 지위는 ‘고작’ 300년 남짓입니다. 그 전에는 중국이 세계 문명의 탑(top)이었던 때가 있고, 아랍 문명이 최고의 학문 수준을 자랑하던 때가 있고, 몽골이 최대의 파워를 가진 때가 있었습니다. 잭 구디(Jack Goody)의 ‘유라시아의 기적(Eurasian Miracle)’에서는 이렇게 큰 범위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류해온 게 인류 역사라고 봅니다. ‘유럽의 기적’은 그 중 가장 최근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성취를 ‘우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에 조심해야 합니다. 영어로 ‘accidental하다’(아무 원인 없이 일어난 일로서 일종의 로또 당첨이라고 보는 것. 이런 건 학문적 주장도 아니다)는 게 아니라, ‘contingent하다’(초역사적으로 결정된 게 아니고 그 시대의 인과관계의 연쇄로 인해 일어났다는 주장)는 겁니다. 21세기가 중국의 패권 시대로 가는지를 역사학자한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주소를 잘못 알고 있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 세계 패권의 향배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역할이나 관계는 어떤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역사가의 답은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한 차원 뒤로 물러선 답을 제공할 뿐이지요.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복될 수가 없어요. 반복된다면 예측이 가능할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 못 하는 거지요.



다만 지난 역사 경험을 들여다보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고 사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남들보다 감을 더 잘 잡든지 혹은 약간 실수를 덜 하는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가는 예측이 아니라 해석을 할 뿐입니다. 그런 경험이 다른 전문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역사가의 영역이고..



지정학적 향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제 역사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활동적 지식인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역사가 역시 가끔은 피끓는 애국열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사실 저도 우국충정 그득한 애국자이거든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일종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경제사를 다뤘지요. 그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이 일상의 관심사와 멀어졌다, 18세기 문학이 중요하게 다룬 절박한 현실(불평등)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 선생님도 문학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수업이나 저술에 많이 끌어안는 편인데요. 피케티의 책이나 그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피케티의 책은 사기만 하고 안 읽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었냐고 묻지 않는 게 신사들 간 에티켓입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그 사람이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숫자와 문학이 만날 때 제일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문학적 진실에서 출발하여 과연 그게 맞는지 한번 세어보고 그 결과를 다시 문학적 진실로 만들어가는 게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봅니다.



[미니북] 주경철

-최근 빅데이터 열풍이 학계로도 향하는 것 같습니다. ‘빅데이터 인문학’이란 책도 나왔지요. 디지털 혁명이 역사학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심대한 영향을 줄 겁니다. 빅데이터의 분석이 지금껏 우리가 파악하지 못 하는 정보를 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빅데이터 분석이 기존 역사학의 분석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긴밀한 도움을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정보는 잔뜩 발굴해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터인데, 그게 바로 역사학이 해 오던 일입니다.



-외신을 보면 빅데이터 인문학의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국내는 어떤 시도나 움직임들이 있는지요?



역사학자들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물리학자의 시범을 본 일이 있을 뿐입니다. 가령, 지난 과거의 책 혹은 신문 자료들이 다 모아진다면, 어느 시대에 어떤 문제들이 가장 중요했고,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떤 지적-정서적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대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시에 사람들의 심성까지 아주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인류 역사를 빅히스토리로 접근한 ‘사피엔스(Sapiens)라는 신간이 최근 여러 나라에서 화제입니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히브루대 교수는 역사의 유용성이 ‘과거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얼마나 우연적인 결과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역사학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앞에서 인류사는 ‘contingent하다’고 말했는데 아마 그 맥락과 통한다고 봅니다.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유발 하라리가 먼저 한 겁니다.) 현재 결과가 우연적이라는 것은 지난 과거에서 지금과는 다른 방향을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거지요. 당면했을 때에는 우연이지만 지나고 보니 필연인 겁니다.



이걸 거꾸로 풀면 필연인 듯 보이는 게 사실은 우연의 연쇄라는 말도 됩니다. 이런 분석과 종합을 하다 보면 인간은 그만큼 더 지혜롭게 됩니다. 내가 얻은 작은 지혜들을 함께 나누는 게 역사(학)입니다. 우리의 사고 폭을 넓히고 당장의 기근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않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역사학을 가르치면서 무엇을 가장 강조하십니까?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뛰어난 점과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틀을 크게 갖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학은 그것을 ‘간접적으로’ 도와줍니다. 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것 맘껏 누리며 살아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원전 3000년 파피루스에도 “요즘 애들은 부모와 선생에게 대든다. 말세인가 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도 헛말입니다. 요즘 학생들 보면 아무도 대들지 않아요. 아마 그러면 교수가 학점을 안 줄까 봐 그러는 것 같아요. 모두 겁먹고 초라하게 사는 것 같아요. (진짜 그런지는 저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군요) 공부는 우리가 학생일 때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더 나은 인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영어 강독 때 학생들 보면 원어민 발음으로 굴려서 읽은 다음에는 해석을 못 합니다. 저는 콩글리시 발음이었지만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을 영어로 읽었습니다. 단, 분노의 포도는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에덴의 동쪽은 너무 길고 폼만 잡는 것 같아서 그 시간에 다른 거나 읽었을 걸 그랬지요.



-밖에서 인문학 열기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대학내 인문학과 사정은 좋지 않지요?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 이야기도 합니다만, 학문을 이어가려는 제자는 있습니까?



그래도 끊기지 않을 정도는 있습니다. 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양사 공부라는 게 역사 연구가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게 많은 데다, 외국사이다 보니 외국어로 된 사료를 봐야 하고 외국의 기본 연구를 많이 봐야 하니까 공부 압력이 큽니다. 선생들이 볼 때는 어학이 떨어진다든지 하면 성에 안 차는 거죠. 석사를 4, 5년씩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도 교수 자리가 적다 보니, 공부 마치고 나서도 어떤 때는 갈 곳이 아예 한 곳도 없기도 합니다. 그러니 공부를 계속하라는 권유를 차마 대놓고는 못합니다. 정말 탐나는 학생이 있으면 쓱 돌려서 “소질 있어 보인다”고 하는 정도지요.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따셨는데, 국내에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이 드물지는 않지요?



제가 갈 무렵엔 그쪽으로 많이들 갔습니다.



[미니북] 주경철

-요즘 우리 학계에서 ‘미국 유학파 헤게모니’ 논란이 새롭게 제기됐는데요, 어떤가요?



저희 학과의 경우 여태까지 미국 의존도가 낮았는데 요즘에는 거꾸로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요. 프랑스사를 공부하러 미국에 가는 경우도 있고. 미국 학계의 지배력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프랑스에서 학위를 했지만, 미국에 1년 연구하러 나가 보니까 그런 게 보이더군요. 유럽에서 뭔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있으면 미국의 좋은 대학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불러들입니다.



그렇게 1년이나 몇 달 단기 코스로라도 데려와서는 그 사람 연구한 것을 강도 높게 짜내서는 흡수하고 흡수하고 합니다. 유럽 학자들도 이미 주류는 미국 쪽에 가 있다고 보니까 자기가 어느 단계에 올라섰다 싶으면 미국 학계나 출판계에서 한번 인정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그런 식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최근 들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최소한 건재하다고 볼 수 있다는 말씀 같군요?



네. 유럽 쪽이 많이 쇠퇴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나마 많이 버텼던 쪽이 인문학, 문사철(文史哲) 정도인데 그마저 조금씩 상실해가는 느낌이 듭니다.



-미국의 지식 헤게모니는 영어의 패권과도 관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니얼 퍼거슨(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이 그런 얘길 하잖아요. 미국의 최대 수출품이 영어라고. 맞는 말 같아요. 모든 사람이 영어라고 하는 그 세계로 들어가야 뭔가 글로벌하게 인정받고 한다는 건 굉장한 거지요.



-서울대에서 자유전공학부제 실험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고, 지금까지 자평한다면 어땠습니까? 계획은?



대학에 입학한 다음에는 스스로 공부해 보고 자신의 자질과 성향을 파악한 다음 전공을 선택할 자유/특권이 있습니다. 심지어 전공을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학생설계전공 – 자신이 교내의 과목들을 골라서 커리큘럼 짜고 지도교수 정하고 논문 쓰면 된다) 매우 이상적입니다.



그런 정도라면 서울대 역사상 최고의 성공이라고 판단합니다.(투입 대 성과 비율로 볼 때; 천 명의 학생을 7명의 교수가 그렇게 키워나가는 것은 기적에 가깝지요) 그런 성과를 계속 키우는 게 좋을지, 통폐합하고 딴 것 또 시작할지는 제 소관이 아니라 학교 본부 소관입니다. 저는 초창기 멤버로 봉사했고 지금은 떠났습니다.



-최근 실험 학교인 건명원에도 참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것 같나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감이 있습니다. 이건 최소한 첫 회 나오고, 그들이 어떤 인재로 사회에 봉사할지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좋아하는 역사가가 있나요?



아무도 모르겠지만 피에르 쟈냉(Pierre Jeannin)이라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유럽 거의 모든 언어로 원사료를 꼼꼼하게 읽고 바위처럼 단단한 논문들을 쓰기로 (학술지 편집자들 사이에) 유명했습니다. 그 분이 제 지도교수였습니다. 어찌나 엄한지 지금도 일 잘 안 풀리면 그 분이 꿈에 나와서 뭐라고 야단치시는데 이런 악몽을 꾸고 나면 깰 때 좀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보고 그런 식으로 살라고 했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또 오실까 두렵군요. 워낙 세상에 좋은 역사가들이 많아 이런 분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눈에 안 띄더라도 탁월한 성과들을 누적해 가는 역사가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미니북] 주경철
-아날학파(1929년 프랑스에서 창간된 ‘경제사회사연보’에서 시작된 역사학파)의 대가인 페르낭 브로델의 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번역에 많은 힘을 쏟아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책은 대학원 때 원서로 처음 읽었어요. 그때가 우리나라에서 소위 아날학파에 대한 인기가 제일 높았던 때라 그걸 읽어야 된다고 믿었지요. 학위 마치고 오니 그걸 번역하자고 해서 두말 않고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낸 큰 책입니다. 자잘한 책을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이런 큰 저서를 한번 완주해 보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자기가 본 것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인데, 저는 브로델식의 자본주의 설명에 대해 전적인 동의는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역사의 한 단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16,17,18세기에 점차 형성되어서 20, 21세기까지 강화된 어떤 체제이지요. 이 역시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멸할 수도 있고 다른 것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근대에 와서는 가장 큰 의미로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체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못 되고 상층부라는 겁니다. 그 밑에 인간의 일상생활이 있고, 그 위에는 시장경제가 있고, 그 위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거거든요.



그 상위 체제가 서구처럼 자본주의일수도 있고 반대로 중국 같은 황제 체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중국의 경우 시장경제까지는 유럽과 같지만 자본주의로는 못 나가고 정치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체제로 갔다는 이야긴데 이런 식의 통찰이 재미있습니다.



[미니북] 주경철

-앞서 국내 좌우 대립 문제도 언급하셨습니다만, 국내에서 자본주의는 80년대 이래 정의나 인간성에 반하는 사회 질서의 대명사로 인식되곤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의 원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얽매는 그 모든 것의 종합으로서 자본주의라는 것을 상정해 놓고 거기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이고 쉬운 해결책 같아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실체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어느 분의 말씀처럼 그게 오히려 정의라는 것도 이상한 논리이고, 그렇다고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것의 원흉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로델이 얘기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형성된 것이고,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최상위 체제이고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피케티만 해도 ‘21세기 자본’ 서문에서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자신은 공산권 붕괴 이후 성년이 된 세대로서 “반(反)자본주의의 의례적인 하지만 게의른 수사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예방접종은 받았다”고 씁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썼더군요. 오히려 지금 이 체제가 이대로 지속가능한지를 묻는다는 거지요. 그가 보기엔 지금의 불평등 심화는 자본주의를 위협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의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국내의 경우엔 종종 정권 비판이 체제 비판과 뒤섞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이야기가 나오면 언어를 더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경우 문제 설정 자체가 자본주의가 선하냐 아니냐로 치닫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는 악하고, 악한 것은 자본주의’ 식으로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자면야 저도 당연히 반대지요.



이 체제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그것이 심해지는 것에 대해 바꿔야 한다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요.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무엇이 선한 사회인가의 문제는 갈래가 다른 문제입니다. 자칫 이야기를 하면 오해를 살까봐 답 자체를 꺼리게 됩니다.



-같은 기업인을 자본가(capitalist)로 보느냐 사업가(entrepreneur)로 보느냐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가들을 보면, 돈벌이보다 사명(mission)을 앞세웁니다. 세상을 바꾸거나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고 그것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겠다는 거지요.



콜럼버스 책을 쓸 때 그 얘길 했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신비주의적 요소가 세속주의와 함께 가요. 지극한 종교심, 그러니까 세계의 지금 단계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요소와 굉장히 세속적인 요소, 즉 그 하나님의 사업을 스페인이 해야 하고 그걸 내게 줬고 따라서 나는 계급적으로도 상승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병존합니다. 수도사이면서 기업가인 거지요.



지금 보면 굉장히 이상한데 그게 중세말 근대초 유럽인의 특징적인 심성이라는 거지요. 아까 말한 기업가 정신도 돈 자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위해 사업을 벌이는데 그걸 위해서 자본을 끌어오고 수익을 남기는 식으로 두 요소가 같이 가고 뒤섞여 있지요.



-아까 콜럼버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 심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스만 해도 월터 아이작슨의 평전에 보면, 인류 전체의 진화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아주 영적(spiritual)이지요. 그 정신이 세속의 결정체인 애플 상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묘합니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콜럼버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묘사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다른 점은 집요함입니다. 뭔가 하나를 잡게 되면 쉽게 바꾸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거지요. 제가 콜롬버스를 이야기하면서 스티브 잡스 같은 데가 있다고도 해요. 자신이 어떤 영감을 받았으며 굉장히 소중한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걸 끈질기게 밀어붙이지요.



-잡스 이후 주목받는 혁신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테슬라, 솔라시티, 스페이스엑스 창업자이자 CEO)도 그런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는 민간 우주항공사업을 벌인 이유가 인류의 새로운 프론티어로 화성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일견 돈키호테 같은데 생각과 의지가 워낙 확고한 데다, 기술적으로 하나둘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면, 자본주의가 그런 것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 다음에 논의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피드백되는 체제라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여기에 ‘반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제가 자본주의를 무작정 옹호한다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게 자칫 악덕 기업주나 이런 것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선하든 악하든 그런 걸 다 포함하는 문명 전체의 역사 발전을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라는 거지요.



[미니북] 주경철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있습니까?



저는 역사 책 추천 같은 건 안 합니다. 편견을 키워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책가게에 직접 가서 두어 시간 투자하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그런 데 가서 시간 보내는 게 최고지요. 학생들에게 방학 동안 멋진 소설책들 시집들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곁에 두고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 있나요?

-최근 국내에서 눈여겨 보는 학자 국내외 한 분씩(복수라도 좋습니다)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 두 질문에 뭐라도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다는 게 새삼 스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정말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군요.



-역사학자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했을 것 같으신가요? 학자나 교수라는 직업이 한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는 어떤가요?



회사원이 되어 무역업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출장 중에 비행기에서 역사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교수는 천하의 ‘만고땡’인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제가 주 6시간 수업을 한다고 하면, 그 다음에 월급 얼마 받느냐고 묻습니다. 월급 액수를 6으로 나눌 태세입니다. 사실 ‘만고땡’인 건 맞지만, 저 하기 달렸습니다. 저는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한 편이라 월급 만큼은 할 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을 디자인하며 살아갈 여지가 주어진다는 것, 이건 정말로 흔치 않은 특권입니다. 그러니까 교수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교수로서 뭘 하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제 주변의 교수분들 다 나름대로 의미있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알면 의외라고 생각할 만한 취미나 특기가 있나요?



의외로 서예를 했습니다. 그런데 글씨는 하나도 안 늘었습니다. 의외로 술도 잘 마십니다. 이건 취미나 특기는 아니지만....



-필생의 사소한 소망과 큰 꿈이 있다면?



사소한 소망은 좋은 여행 많이 하는 겁니다. 빈에 가서 멋진 그림도 봤고 코르시카 섬도 가 보았고 프로방스 산골도 돌아다녀 봤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호사를 누리리라고는 꿈도 못꾸었는데,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가면 되는 거였습니다.



큰 꿈은 이제 없습니다. 중간 정도 꿈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대로 좋은 책 한두 권 더 쓰는 것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계신 책이 있습니까?



여름 방학 동안 두 권 쓰려는 게 있습니다. 중세 마녀 사냥에 관한 것하고 서양 근대사 해설서입니다. 마녀사냥 연구는 어디에 끌려 들어가서 하게 됐는데 의외로 재미있어서 작업 중입니다.



좀 더 큰 주제로는 서양 근대사에 관한 책입니다. 기존 역사들은 학술적이어서 일반인은 읽기가 너무 딱딱한 감이 있습니다. 해설을 해주되 너무 옛날 얘기 말고 최신 연구 성과도 넣어서 써보려고 합니다.



-요즘 (학문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가장 궁금한 게 뭔가요?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보다 더 미스테리하고 남한 사회가 북한 사회보다 더 미스테리합니다. 그 둘이 어떻게 이런 기묘한 방식으로 공존하는지도 미스테리고요. 수십 년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며 결국 진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평생 전쟁을 결국 경험하지 않고 생을 마칠 수도 있는데, 이런 인간은 인류 역사상 아주 드문 행운아들입니다. 수십 년 내에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미니북] 주경철

◆주경철 교수



1960년 서울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 연구원으로 있었다.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지은 책으로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네덜란드: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문화로 읽는 세계사’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대항해시대’ ‘문명과 바다’ ‘문학으로 역사 읽기’ ‘문학 읽기’ ‘히스토리아’ ‘히스토리아 노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다. 역서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역사와 영화’ ‘유럽의 음식문화’ ‘제국의 몰락’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유토피아’ ‘가차없는 자본주의’ ‘물의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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