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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그들은 왜 그많은 돈으로 ´명품´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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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0:00 조회1,3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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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 일화 가득한 <명품의 탄생>








▲ 김정희의 세한도 (국보 제180호.개인 소장)



"단순하고 간결한 그림(세한도)이지만 예술과 학문을 통해 유배의 시련을 이겨내려는 김정희의 곧은 정신이 화면 한가득 휩쓸고 지나가는 듯하다."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 그는 북경의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세한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세한도>를 보는 순간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세한도>를 구입한 뒤 그는 <세한도>에 흠벅 빠져 늘 감상하며 지냈다. 얼마나 <세한도>를 좋아했던지 <이조에 있어서 청조문화의 도입과 김완당>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1943년 그는 이 그림을 가지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 책 속에서


<세한도>는 1844년, 59세의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늘 자신을 위해 잊지 않고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보낸 그림이다. ´세한´은 설 전후의 가장 매서운 추위, ´세한도´란 ´차가운 세월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김정희가 그린 ´세한´은 ´유배(지)´ 혹은 ´유배당한 자신의 처지´. 이 그림은 조선시대 문인화의 정수로 손꼽힌다.


작품 자체에도 김정희의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지만, ´국보 제180호´인 이 그림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의 사연 또한 남다르다.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이 죽은 후 <세한도>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일본인 추사 연구가인 ´후지쓰카 지카시´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에 소전 손재형은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때는 1944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라 도쿄는 밤낮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격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손재형은 물어물어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 그 부근 여관에 짐을 푼다. 그리고선 매일 같이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 병석에 누워있는 그를 병문안한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고, 후지쓰카가 묻는다. "도대체 누구인데 왜 날마다 나를 찾아오는가?"고.


손재형은 후지쓰카에게 <세한도>를 돌려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후지쓰카는 당시 김정희와 세한도에 흠뻑 빠져 있었던 터, 어림없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손재형은 그 길로 쫓겨난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매일 가고 또 가 후지쓰카에게 무릎을 꿇고 <세한도> 반환을 애걸복걸한다. 그러기를 석 달, 후지쓰카는 약속한다.


"내가 그걸 지금 줄 수는 없소이다. 대신 내가 죽을 때 우리 아들에게 유언을 하겠소. 한국으로 돌려주라고."


그러나 손재형은 다시 열흘 넘게 그 집을 드나든다. 후지쓰카가 약속해도 훗날 그의 아들이 꼭 돌려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후지쓰카는 손재형에게 <세한도>를 그 자리에서 넘겨준다. 그리고 얼마 후 후지쓰카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불이 났다고 한다.


´앗차!´ 싶다. 손재형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세한도는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니 말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소장자의 집을 100일씩이나 드나들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유물 반환을 요구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더욱이 그때는 일제강점기 말, 또한, 태평양전쟁으로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 아닌가.


다만 김정희의 한때가 스며있는 그림이라고만 알고 있던<세한도>가 다시 보이는 일화다.





<명품의 탄생>겉그림
ⓒ 산처럼





<명품의 탄생>(산처럼 펴냄)은 우리 컬렉션과 컬렉터들의 이야기다. 바꿔 말하면 수집품과 수집가들의 이야기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것들은 세상의 수많은 수집품들 중 손재형이 찾아온 <세한도>와 같은 우리 조상들의 유물들, 그리고 이런 유물들을 오늘 우리에게 있기까지 남다른 소명과 각고의 열정을 바친 수집가들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세한도>처럼 어떤 유물들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오늘날 우리들이 유물들을 만날 수 있는지 등.


<세한도>의 일화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들이 많아 한 꼭지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감동스럽다고 할까?


수년전부터 경매가 활성화되면 문화재 컬렉션, 미술품 컬렉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 와중에 문화재와 미술품을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려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나친 기우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컬렉션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컬렉션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컬렉션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그러하듯 컬렉션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 ´저자의 말´중에서


2007년 5월 22일. 서울 옥션의 경매 현장에서 박수근의 <빨래터>(유화)가 45억2천만 원에 낙찰되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 세간에 화재가 됐다. 이 때문인지 최근 컬렉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에게 컬렉션과 경매는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컬렉션은 20세기 이후에나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컬렉션의 역사가 있단다. 광통교 일대는 17세기 후반부터 시작, 18~20세기까지 대표적인 미술 유통공간이었다고. ´정선´의 후원자였던 시인 이병연, 국경을 넘나들던 조선 최고의 컬렉터 김광국, 전기, 이하곤, 김경수, 오경석 등과 같은 전문 컬렉터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중 오경석은 훗날 우리 문화재 수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경석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서화에 대한 안목은 아들 오세창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오세창이 누군가. 그는 그 자신도 컬렉터였지만 자신의 안목과 생각을 전수, 수많은 전문 컬렉터들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대표적인 컬렉터는 컬렉터의 거목 간송 전형필, 우경 오봉빈, 다산 박영철 등, 이들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킴으로써 민족문화를 지켜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광표´는 누구?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알찬 내용이 빼곡한 책도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책을 읽다가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또 봤다.



저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나와 199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그간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매력을 소개하는 글을 주로 써왔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미술이 점점 더 좋아져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했다고.



지은책으로는 <한국미술의 美>를 비롯,<북한의 무놔유산> <보는 즐거움,아는 즐거움> <손안의 박물관> <국보 이야기> <살아있는 역사 문화재 1 ·2>등이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 18~19세기부터 시작된 수집 열기부터 화가들의 후원자였으며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컬렉터들의 역할 등을 유물과 일화 중심으로 들려준다.

손재형의 일화는 제4부 ´컬렉션과 민족문화의 수호´ 편에서 소개된다. 전형필, 오세창, 박영철, 오봉빈 등의 일화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당시의 경매, 이왕가 박물관과 총독부 박물관의 컬렉션들의 역사, 당시 중앙아시아를 돌며 각국의 문화재 약탈을 일삼았던 오타니와 일본으로 쫓겨 가며 미처 가져가지 못한 오구라의 컬렉션 등의 유물적 가치와 비중 등이 소개된다.


감동스런 일화 또 하나. 2003년 3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쁨으로 들뜬다. 4일 전에 문화재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이 4일 만에 문화재 기증을 해버린 것이다. 기증된 유물들은 국보4건과 보물 22건을 비롯한 문화재 100점. 우리 유물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성문종합영어>의 송성문 선생이다. …(중략)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고인쇄 자료는 이 분야 최고의 수집품이다. 1960년대부터 베스트셀러였던 영어 참고서를 팔아 번 돈을 모두 투자해 수집한 수준 높은 컬렉션이었다. 돈으로 치면 수백억 원 대를 호가한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당시 지건길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증받은 이들 문화재들은 국립중앙박물관 1년 예산(60억원)으로도 겨우 두어 점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 책속에서


송성문 선생은 "언론에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기증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또, 소장품들을 찍은 사진들도 "이젠 모두 가위로 잘라버려라. 내 것이 아니다"라며 아들에게 당부했다나. 이후 한 달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유물들도 아들을 통해 기증된다.


송성문 선생이 고문서와 고서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당시, 제지공장에 재생용 종이로 실려 가거나 여염집의 초배지, 아이들의 제기차기용으로 쓰이는 귀중한 고서나 고문서의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면서부터라고. 송성문 선생뿐이랴. 오늘날 우리들이 사료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들과 유물들을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열정과 각고의 노력과 소명, 아낌없는 기증 덕분일 것이다.


책은 이런 그들의 일화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스럽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내용이 충실한 책도 그리 많지 않을 것. 이야기도 감동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유명한 문화재들과 그 문화재들의 숨은 일화를 맘껏 접하는 즐거움까지 다복하게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모두 덮은 지금, 포만감이 크다.


최근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장기적인 안목이나 미술에 대한 애정 없이 그저 돈벌이를 위한 ´묻지마 투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들은 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집을 할까? 문화재 혹은 유물, 미술품 등과 같은 컬렉션들은 개인의 호사와 명예를 위한 것일까?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 마땅할까?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 북한군에게 고스란히 뺏길 위험에 처했던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의 유물들을 살려낸 몇몇 사람들의 기지 ▲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청자 사랑 ▲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전´과 윤장섭의 국보 도자기들 ▲ 우리 기증 역사상 최초의 다량 기증자인 수정 박병래 ▲ 최고의 컬렉션을 기증한 동원 이홍근 ▲ 미술품만이 아니라 미술관까지 통째로 기증한 이회림 ▲ 이국 땅에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혼쾌히 내놓은 두암 김용두 ▲ 고려 동경 등 792점의 수집품들을 기증한 백정양 ▲ 4차례에 걸쳐 2292점을 기증한 티벳 박물관장 신영수 ▲ 문화부 등록 사립박물관 1호였던 홍산박물관 엄순녀씨의 기증 ▲ 유장총과 이우치 부자의 기와인생 ▲ 후지쓰카 부자의 끝없는 추사 사랑 등도 재미있다.





**기사 링크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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