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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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광주에 정착한 울산김씨는 영남 사람일까 호남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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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9-01 00:00 조회1,6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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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일가친척을 만나는 민족 최대의 명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족보다.



족보란 ´한 성씨의 시조를 기점으로 하여, 그로부터 출생한 자손을 일정한 형식과 범위로 망라한 집단적 가계 기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이지만, 실제적인 기점은 17세기 후반이고, 18세기엔 완성된 형태의 족보가 자리 잡으면서 ´족보 장사´가 생겨날 만큼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 역사상 족보 간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양반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됐고 나라가 망했어도 양반 의식만은 여전했다. 족보로 공인되는 양반이야말로 모두가 선망하는 신분이자 품격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였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에게 족보는 현재진행형이며,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가 병존한다.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는 이런 점에 주목해 족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저자는 족보의 탄생부터 변천 과정, 허구와 실체를 추적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전통을 가꿀 방안을 모색한다.



저자에 따르면 족보와 혈통은 전통사회 지식인의 필수 정보였다. 이른바 보학(譜學) 커뮤니케이션으로, 선비사회에서는 자신의 족보뿐 아니라 남의 집 혈통까지 꿰고 있어야 대화에 낄 수 있었다. 물론 남성들의 이야기다. 성리학적 질서가 보편화한 17세기 이후 여성은 부계 중심인 족보에서 고작 성과 본관만 거론됐을 뿐이다. 앞서 초기 족보엔 외손 당대만이 아니라 외손의 외손으로 이어지는 외후손을 족보에 차별 없이 등재해 내·외손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가족의 지위를 인정했다.



저자는 혼사나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족보를 두고 우리에게 묻는다.



"전라도 광주 인근에 정착한 울산김씨, 영일정씨, 행주기씨와 경상도 안동 땅에 정착한 광산김씨, 순천김씨, 전주류씨는 영남 사람인가, 호남 사람인가? 아니면 서울 사람인가? 시조 할아버지가 살았던 본관자는 무엇이고, 중시조 이래 줄곧 살았던 한양의 동네는 무엇이며, 가까운 선조가 살았던 본적지는 또 무엇인가? 혈연과 지연으로 맺어진 성씨와 본관, 종친회와 향우회가 여전히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오늘의 현실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내 시조는 누구인가? 그리고 중시조는 누구이며, 입향조는 누구인가? 동일한 시조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마당에 이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굳이 영남 사람, 호남 사람, 서울 사람으로 편 가르기를 할 이유가 있겠는가?" (365~366쪽)



한국의 족보 문화는 조상 만능주의와 부계 중심주의에 따른 배타성과 편협성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낳았다. 그러나 이른바 ´명문가´가 지역사회에 웅거해 이 나라를 지탱해온 것도 사실이다. 향촌 자치의 공동체 생활에 젖어 있던 전통적 삶의 방식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것이 지역의 명문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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