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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한국인 정체성 담긴 족보, 그리고 혈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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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9-01 00:00 조회1,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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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는 글자 수가 일정하지 않은 이두식 이름만 있었다. 거칠부, 이사부, 비지부, 급진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한자식의 두 글자 이름이 도입됐다. 그러니까 신라는 건국초기 박·석·김 세 성씨가 돌아가며 왕을 했다는 것은 후대에 소급해 붙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



18세기 중반 조상의 연원을 엄청나게 올려잡는 풍조가 일었다. 본관을 달리해도 성만 같으면 동일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조상동원설’(祖上同源說)이 나온 것이 이 즈음이다. 여러 본관으로 나뉘는 안씨가 모두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이 이런 사례다. 다른 성씨까지도 같은 형제에서 갈라졌다는 설까지 나타났다. 안씨·이씨 동원설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성씨란 역사성의 틀을 넘어 심성의 영역으로까지 파고든다. 지금도 결혼, 장례 등 집안의 대소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조상이고, 족보다. 조상의 뿌리를 찾아 시조를 선양하는가 하면,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배타성을 보이기도 한다.




책은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깊게 자리 잡은 성씨와 족보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초기 족보의 형태부터 시대에 따른 변화상, 족보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 등을 설명하고, 성씨와 본관의 유래를 살펴본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독특한 족보의 사례는 흥미롭다. 내시는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양세계보’(養世系譜)란 족보를 남겼다. 관직에 진출한 구성원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진신보’(搢紳譜), ‘잠영보’(簪纓譜)는 관직진출자의 계보를 밝힌 것이다.



문과 급제자에 관한 인명록이나 일반 문사록에 해당하는 ‘문보’, 무관 출신 집안의 가계를 정리한 ‘무보’가 있었다. ‘선세외가족보’(先世外家族譜)는 외가의 계보를 추적한 것인데, 외가의 외가까지 수록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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