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새해 한국 책지도…“읽기의 감수성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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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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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우리 생각과 실천을 벼려줄 양서들이 찾아온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편혜영, 정유정, 김중혁, 윤대녕, 한나 아렌트, 이마누엘 칸트, 알랭드 보통, 로자 룩셈부르크, 노명우, 강상중.< 한겨레> 자료사진
국내 인문학술서·문학 출판사 33곳
새해에 펴낼 야심작·기대작
“현실을 헤쳐나갈 행동의 지도”
“구어체 형식의 책 출판 늘 것”
길 없는 곳에서 지도조차 없다면 어찌 길을 갈 것인가.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은 이 부박한 정치 실종의 시대에도, 날로 가팔라지는 1대 99의 불평등 양극화 세태 속에서도, 종이를 거세게 밀어내는 스마트폰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할 것이다. 책은 모든 생각의 밑천이요, 현실을 헤쳐나갈 행동의 지도인 탓이다. 국내 인문학술서와 문학 출판사 33곳에 병신년 새해에 펴낼 야심작, 기대작을 물은 것은 그래서다. 책 만드는 이들은 2016년의 현실에 응답하고 책지도를 그려나갈 열쇳말로 ‘권리’와 ‘참여’ ‘정치’ ‘정당’ ‘공부’ ‘새로운 상상력’ ‘진보의 재구성’ ‘불안’ ‘분노’ ‘공부’ ‘기본’ ‘대안’ ‘각론’을 들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로 길이 있다”고도 했다.
■기본과 초석을 다진다 오래됐어도 늘 뜨거운 질문을 던지는 고전 읽기의 밑바탕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출판의 임무다. 한국칸트학회와 손잡고 한길사가 서양 근대 철학의 출발이라 할 이마누엘 칸트 전집을 발간한다. 총 16권 중 1차분 세 권을 상반기에 낸다. 우리 현대사의 등불 함석헌 사상의 정수를 세 권으로 추린 함석헌 선집도 나온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출판불황이 깊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길이 있다. 기본으로, 고전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석헌 사상을 젊은 독자에게 안내하는 책도 나란히 나온다. 철학자 김상봉의 <함석헌의 씨알철학>(길)과 김영호 함석헌학회 회장의 <함석헌 사상 깊이 읽기>(한길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김재홍 옮김)이 전공자의 희랍어 원전 번역으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 메가(MEGA)판 번역으로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다. 이승우 길 기획실장은 “시류에 순발력있게 호응하기보다는 학문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회학 논문 상을 두차례나 받은 신진 사회학자 윤여일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상계의 담론 지도를 파고든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담론>(돌베개)을 선보인다. 새물결은 조르조 아감벤의 <왕국과 영광>을 번역 출간한다. 조형준 새물결 주간은 “2016년은 경제난과 함께 정치의 해다. 곧 21세기의 정치경제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감벤의 ‘왕국과 영광’의 사유는 교과서 국정화의 본질을 정면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현실을 드러내라, 새로운 상상력 국가가 촉발시킨 역사논쟁 속에 역사서 출간붐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에 선뵈는 사학자 김정인의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책세상)도 그 맥락에 있다. 한석정의 <만주모던>(문학과지성사)은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독법으로 1930년대 일제의 ‘만주 모던 국가’ 모델을 끌어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정당정치가 실종되고 답답한 정치판에서 현실을 돌파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인류학적 현지조사 연구로 가족구조, 분배방식을 분석하는 책이 나온다면 그 다름을 새로이 볼 수 있고 그런 상상력이 정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감정노동, 여성노동이 소비되고 착취되는 현실을 생생한 르포르타주로 분석해 화제를 불렀던 <감정노동>의 저자 앨리 혹실드의 <가족은 잘 지내나요?>(이매진)도 연 초 기대작이다. 한국 사회의 결혼·노동·소비·교육 분야를 지위경쟁이란 코드로 더듬으면서 상대평가제에 기반한 승자 독식 실태를 분석한 마광래의 <지위경쟁>(개마고원)도 주목된다. 굵직한 경제학 책을 내온 부키는 긴축정책과 국내총생산(GDP)의 허구성을 까발린 번역서 <긴축>과 <지디피>(GDP) 두 권을 연달아 내놓는다. 고령화 시대 복지국가 의제인 연금 해법을 담은 <연금 시민 교과서>(책세상)도 주목된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직접 겪은 100명을 구술 인터뷰해 기록한 <100사람의 10년>은 정치와 민주주의, 현실정치 탐구서를 내온 출판사 후마니타스가 기대작으로 꼽은 책이다. 죽음을 성찰하는 흐름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술사가 스터즈 터클의 <여러분 죽을 준비 했나요-죽음 앞에서 삶을 말하는 64명의 사람들>(이매진), 국내 웰다잉 연구자 최철주의 <한국인의 죽음>(메디치)도 상반기에 선뵌다.
■각론과 새 독자, 과학 대중화 새해는 인문서든 과학서든 쉬우면서도 깊이있게 담론을 펼치는 책, 한 주제를 각론으로 파고드는 과학책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된다. <세상물정의 물리학>과 <빅 퀘스천>으로 지난해 적잖은 독자를 만난 출판사 동아시아는 인공지능 이슈를 다룬 제임스 배럿의 <우리의 마지막 발명품>과 물리학자 김상욱의 <과학이 희망이다>를 기대작으로 꼽았다.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는 “이제 과학책이 단지 과학지식을 설명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논의하고 봐야 할지 사회와 연관지어 사유하는 층위로 한단계 올라섰다”고 말했다. 마음산책은 인터뷰 집 <한나 아렌트의 말>과 <수전 손태그의 말>, 시인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까지 ‘구어체’ 형식의 책을 줄줄이 낸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대형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영향도 있겠지만 구어체 형식의 책 읽기 층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같은 주제,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포맷으로 전달되는가에 따라 읽기의 감수성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2013년 <세상물정의 사회학>으로 ‘세상물정’이란 키워드를 독서·출판계에 던진 사회학자 노명우는 <세상물정 극장>(사계절)을 펴내며, 한·일 두 사회에서 독자층을 거느린 강상중은 <당신은 누구? 나는 여기에 있다>(사계절)로 독자를 찾아온다.
■소설의 귀환, 유명작가 장편 줄줄이 신경숙 표절사건 여파로 움츠렸던 문학판도 다시 용틀임을 한다. 유명 소설가들이 잇따라 장편을 선보인다. <7년의 밤>의 정유정이 간척지 신도시 한 아파트를 무대 삼은 ‘1인칭 사이코패스 소설’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내놓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가 7년 만의 장편 <매스게임 제너레이션>을, 윤대녕이 <피에로들의 집>을 문학동네에서 낸다. 문학과지성사에선 편혜영과 김경욱, 최수철의 장편이 출간되며, 민음사에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다룬 김숨의 < L의 운동화>와 김중혁의 경장편 <나는 농담이다>가 나온다. <완득이>의 김려령은 창비에서 소설집을 묶는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방북까지 현대사 격동을 통과해온 황석영의 ‘자전’과 성석제의 소설집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 최승자, 도종환, 김혜순, 허수경, 김경주 시인의 신작 시집도 선보인다. 외국 작가론 알랭 드 보통의 20년 만의 장편 <사랑의 과정>(은행나무), 지난해 노벨문학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셰비치의 <아연 소년들>(문학동네)도 독자를 만난다.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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