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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주말을 여는 책 |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의 단단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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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5-25 11:18 조회9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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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32857_P.jpg 이충렬 지음 / 산처럼 / 1만5800원

"아무 것도 없었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향조차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열아홉살 때 얻은 폐결핵과 늑막염, 그리고 스물아홉 나이에 방광 절제 수술을 받은 후 줄곧 옆구리에 차고 다닌 소변주머니뿐이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두 형은 해방 후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누나 둘은 먼 곳으로 일찍 시집가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남동생이 있지만, 아픈 몸으로 짐이 되기 싫어 결혼시켜 멀리 떠나보냈다.

머릿속에는 늘 이야기가 맴돌았다. 강아지똥을 보면 자신의 서글픈 삶이 연상되었고, 도시로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소녀들을 보면 다리를 절룩이며 힘들게 살던 사촌 여동생이 생각났다. 외롭게 타향살이를 하는 피란민 할아버지의 사연을 들으면 6.25 전쟁 때 폭격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였고, 어머니의 서러운 삶을 돌이켜 보면 입고 계시던 무명저고리가 먼저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원고지에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새로 나온 책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중 일부다.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 같은 외국 작가들의 번역동화를 읽어야만 했던 시절, 권정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펴내며 우리 창작동화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강아지똥'을 통해 한국 창작동화에서는 볼 수 없던 죽음과 삶의 문제를 말했다. '아기양의 그림자 딸랑이'는 동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분단 및 참전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뤘고 '무명저고리와 엄마'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분단, 베트남참전 등 민족사를 말했다. 그는 40년 동안 100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활발하게 읽히고 있다.

00132858_P.jpg 2006년 '랑랑별 때때롱'을 집필할 때의 모습.


그의 작가정신은 몸이 아팠기에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어 병과 가난을 견뎌야 했던 상황에서 계속됐다. 전기문학을 집필해 온 저자 이충렬은 권정생의 감동적인 삶과 작가정신을 복원하고자 생전 인터뷰, 편지, 수기, 수필, 지인들의 그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어린 시절부터 권정생의 삶을 재구성했다.

앞으로 권정생 연구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본(定本)이 되기를 기대한 이 책은, 새로운 내용을 상당수 발굴했다. 권정생은 자신이 18세 때 쓴 소설이 잡지 '학원'에 실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학원'은 당시 청소년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잡지로, 그의 작품이 문학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으나 논문이나 단행본에 실린 적은 없었다. 이에 저자는 1955년도에 이어 1954년도, 1956년도 '학원'을 전부 살폈고 당시 권정생이 살던 부산시 초량동의 '전경수'의 소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수는 권정생의 어린 시절 이름이었고 전경수는 권경수의 오자였던 것이다. 해당 작품 '여선생'은 이 책에 실려 있다.

권정생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복원됐다. 동화작가에게 사랑의 존재는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자 작품 속에 흐르는 따뜻함의 근원일 수 있다. 저자는 권정생이 살던 조탑리의 주민들로부터 그가 한 여인을 오래 만났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수소문 끝에 그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그의 내면의 아픔도 다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반드시 완성하고 싶다고 했던 '한티재 하늘'의 마지막 부분인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의 상황은 그가 어머니한테 직접 듣지 않았으면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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