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문화] ‘아동문학 큰 별’의 고단했던 삶을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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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이충렬 지음/산처럼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버린 끝에, 참다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1974년 세상에 나온 첫 동화집 ‘강아지똥’의 작가의 말에 실린 권정생(1937∼2007) 선생의 수줍은 목소리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평생을 아프고 가난하게 살아왔다. 폐결핵과 늑막염을 평생 달고 살았으며, 29세 때 방광절제수술을 받은 후 옆구리에 소변줄을 달고 다녔다. 가족도 없이 혼자 교회 종지기로 살면서는 약값을 마련하긴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등 100편이 넘는 동화를 온몸으로 남겨 한국 아동문학에 큰 별이 됐다. 외국 작가들의 번역동화를 주로 읽던 시대에 한국 아동문학에 족적을 남긴 그의 전기가 오는 17일 11주기를 앞두고 출간됐다.
권정생의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은 한국 창작동화에서는 볼 수 없던 현실적 소재와 주제들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분단, 베트남전쟁 참전이라는 민족사를 언급하는가 하면 죽음과 삶의 문제도 다뤘다. 이는 권정생 자신의 어두웠던 성장기, 그리고 치열했던 작가로서의 생과 맞닿아 있다. 1937년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東京) 빈민가의 셋집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한국으로 온 그는 없는 살림에 중학교도 가지 못한 채 병마와 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가족들이 숨지거나 떠나 홀로 남은 그는 경북 안동시의 한 교회 관리를 맡는 조건으로 작은 방을 얻어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 글을 한 줄 한 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동화는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몇 차례 최종 후보까지 오르다 고배를 마셨고, 1969년 ‘강아지똥’이 월간지 ‘기독교교육’에 실리며 겨우 작품이 세상에 나왔지만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잡지의 원고청탁을 받아 겨우 약을 사 먹고, 때로 원고를 써보내도 원고료가 오지 않아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처절하게 글을 썼다. 훗날 아동문학가 이오덕, 친구 이현주 목사 같은 인연들이 찾아오면서 조금 숨통이 트이지만, 삶이 고단한 것은 여전했다. 그는 2007년 70세의 나이에 눈을 감으면서도 가난한 삶 끝에 남긴 유산과 인세를 동화를 읽어 준 어린아이들에게 남겼다.
저자인 이충렬은 “작가는 오랜 습작 과정과 문학적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되는 것”이라면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권정생의 작가로서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2년 넘는 시간을 자료 조사와 인터뷰에 들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결과로 이 책에는 권정생이 18세 때 써 잡지 ‘학원’에 아명 ‘권경수’로 발표한 소설 ‘여선생’이 처음으로 실렸다. 또 평생 홀로 살았던 권정생이 특별한 감정으로 만난 한 여인의 이야기도 처음 다뤘다. 336쪽, 1만5800원.
인지현 기자 loveo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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