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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이근형의 오독오독] 학살, 공포ㆍ순종의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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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28 00:00 조회8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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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반공으로 포장된 제주 4.3사건, 이승만 정부가 후원 방조
'빨갱이' 프레임으로 폭력 정당화, 심리적 연좌제 등 후유증 여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해 3월 10일 오전 11시 22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로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됐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헌재 앞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탄식과 분노의 외침이 시작됐고 이는 반대파와 지나가는 시민을 향한 욕설과 폭행으로 이어졌다. 한 노인이 사다리를 들고 무방비 상태의 기자의 등을 내려친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폭력은 중대한 범죄이고 처벌이 따르는 일이지만 이들은 거리낌 없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한장면



사회학자인 한성훈은 르완다,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사례를 나열하면서 그 안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그는 다수의 제노사이드 범죄가 단순히 증오와 광기의 발현이 아닌 국가의 정책과 후원으로 일어났음에 주목했다. 신생 국가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한데 정부는 학살을 집행함으로써 반대자와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공포를 통해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효과를 얻는다. 자국민을 향한 대량학살이 사실은 극한적인 관료주의가 만든 이성적인 행동이었다는 얘기다.

이승만 정부가 벌인 학살들도 그랬다. 제주 4ㆍ3 사건, 여수사건, 11사단 토벌작전 등은 전쟁 중에 국민을 강력하게 통제할 필요성을 느낀 정부가 반공의 이름으로 후원 혹은 방조한 사건들이었다. 자국민을 향한 잔혹한 학살이 가능했던 이유로 저자는 "증오라는 감정 그 자체가 정치 행위의 출발점이 되었을 때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매우 손쉬운 사회화 과정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빨갱이를 죽여라"는 마법의 선동은 대상을 손쉽게 비인간화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애국심과 반공주의로 무장한 가해자들이 아직 호적에조차 오르지 못한 갓난아이까지 죽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11사단 3대대의 거창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거창경찰서장 김갑용은 1951년 국회 조사에서 "적색분자나 이적 행위를 한 공안 분자를 쏘아 죽였으니까 이런 행위는 당연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사상으로 무장한 세력이 폭력을 자기 정당화하는 일은 앞서 언급한 노인들의 반대파 시민 폭행과도 맞닿아 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상대방을 양심의 가책 없이 사적으로 단죄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단어다. 최근까지도 이들을 사상적,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은 바로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조직이다.

미얀마과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 테크나프지역으로 도피 중인 로힝야족 난민들.
AP연합뉴스



저자 한성훈은 책 중후반부터는 학살 그 이후를 다룬다. 독재ㆍ권위주의 정부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자녀와 일가친척에 연좌제를 씌우고 요시찰, 신원조회 등의 이름으로 평생을 국가 감시하에 놓았다.

피해자들은 그들을 '빨갱이'로 둔갑시킨 국가로부터 권리를 제한 당했다. 공직에 나설 수 없었고 기업 취직에서도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사찰을 당했다.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 정보기관들은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찰을 이용했다. 이는 시민 통제가 필요할 때마다 국가안보 확립, 국민화합의 명목으로 탄압에 활용됐다. 국가가 불법적으로 국민을 배제하는 역사는 계속됐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민주정부들이 들어선 뒤에야 피해자들은 조금씩 목소리를 내게 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거쳐 진실화해위원회 등을 통해 학살사건의 진실들이 규명됐다. 전쟁 중 국군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이계준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어머니 김증산의 사망기록을 '여자 유격대원으로서 아군과 전투에서 사살'이 아닌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바꿀 수 있었다. 자신과 아들이 공무원ㆍ교사가 되는 길을 막아섰던 굴레를 벗는 데 50여년이 걸렸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모든 것을 규명해 주진 못했다. 저자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배상을 제외함으로써 타협적으로 과거청산이 이뤄졌음을 한계로 지적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국정원, 검찰, 국방부 등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는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었다. 저자는 국가 범죄가 완전한 단죄와 반성 없이 넘어갔고 이명박 정권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사찰로 국가의 시민 배제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한다.

국가는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조직이다. 우리 역사에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독점한 폭력을 비합법적으로 사용해 만든 상흔들이 남아있다.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 고리를 언제쯤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까.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 한성훈 / 산처럼 / 2만5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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