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극단의 시대, 네 가지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경합했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관련링크
본문
신간 '20세기 이데올로기'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200년 역사를 네 가지 시대로 구분했다.
그는 인류가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극단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봤다.
영국에서 사회주의역사학회 창립을 주도한 좌파 역사학자인 윌리 톰슨은 신간 '20세기 이데올로기'(산처럼 펴냄)에서 홉스봄의 시기 구분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는 1914∼1991년의 역사에 대참사(1914∼1945), 황금(1945∼1973), 위기(1973∼1991)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대입하고, 각각의 시기에 네 가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조명한다.
저자가 뽑은 20세기의 주요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다. 그는 20세기를 뒤흔든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였다고 인정하면서도 민족주의는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따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이데올로기들의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된 모든 이데올로기는 어떤 의미에서 해방을 약속한다"며 "가장 엄격한 복종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들조차 그러한 약속을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해방을 추구하고, 공산주의는 집단의 혁명적 노력을 통해 착취와 계급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자유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환영(幻影)으로 여기지만 위계적인 조직 속에서 부여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파시즘도 특정한 희생양을 잡아 괴롭히는 이유가 대중이 겪는 고통을 해소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처럼 지향점과 구현되는 바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이 20세기 초반에는 열띤 경합을 펼쳤다고 지적한다. 당시 가장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보수주의가 득세했고 공산주의와 파시즘도 힘을 키웠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실질적으로 세계를 양분했다. 자유주의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우파 자유주의와 서유럽과 북유럽에 뿌리를 내린 좌파 자유주의로 세분됐고, 공산주의는 확산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저자는 1973년 이후 나타나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유착한 형태로 바라본다. 무한한 자유를 얻어낸 자본이 범죄 조직처럼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70년대부터 공산주의가 서서히 퇴조했지만, 파시즘은 부활의 전조를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의 경쟁이라는 틀을 서구뿐만 아니라 아시아에도 적용한다. 그는 1945년 이후 한국에 사실상 독재 형태의 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점차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한다.
반면 공산주의 북한에 대해서는 "풍자만화처럼 보일 만큼 터무니없는 모습을 취했다"고 비판한 뒤 "1973년 이후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북한과 비교하면 차라리 느슨하고 자유롭게 보였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결국 이데올로기가 자유주의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경훈 옮김. 584쪽. 2만8천원.
psh59@yna.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