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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책과 삶]이데올로기 합종연횡이 연출한 ‘극단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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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8-28 00:00 조회1,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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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0세기 이데올로기
ㆍ윌리 톰슨 지음·전경훈 옮김 |산처럼 | 584쪽 | 2만8000원

지난 세기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들은 ‘파시즘’ 체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치 독일은 집요하리만치 한 인종을 절멸시키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그 끔찍한 만행은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인종주의는 물론, 사회 전반에는 군국주의,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 포퓰리즘적 통치 방식도 배어 있었다. 파시즘의 확산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침체에 빠져 있던 독일 경제, 히틀러의 광기 어린 카리스마, 공산주의를 두려워한 중산층을 비롯한 대중의 폭넓은 지지 등이 모두 영향을 줬다.

[책과 삶]이데올로기 합종연횡이 연출한 ‘극단의 시대’

그런데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저자 윌리 톰슨은 “바이마르공화국은 어떤 면에서 파시즘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맞다. 1920년대 독일에서 보수주의를 표방했던,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까지 흔적을 남긴 모범적인 헌법 체계를 갖췄던 바이마르공화국이다. 당시 정부가 불황의 늪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틈을 타서 나치는 농민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였고, 1930년 의회 선거에서 제2당에 올랐다. 보수의 무능과 무기력이 파시즘을 자라나게 한 것이다. 파시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공공연히 기득권 보수 세력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파시즘과 보수주의의 관계는 20세기 세계사에서 ‘이데올로기’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암시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여러 이데올로기 간의 흥미로운 합종연횡을 보여주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20세기의 지배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지목된 것은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네 가지다. 여기서 이들의 정의를 하나하나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책에서 공산주의란 실제 공산주의 정권과 함께,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로 통용되는 이데올로기를 지칭한다.

저자가 다루는 20세기는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구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로, 에릭 홉스봄의 1994년 저서 <극단의 시대>의 구분과 일치한다. 이 책의 원제가 <극단의 시대와 이데올로기>이고 저자 역시 홉스봄과 맥을 같이하는 영국 사회주의 역사학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긍이 간다. 저자는 20세기를 다시 ‘대참사의 시대(1914~1945)’ ‘황금시대(1945~1973)’ ‘위기(1973~1991)’의 세 시기로 나눠서 살핀다.

20세기 이데올로기의 대표주자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며 발전해왔다. 인간사에서 나타나는 교류와 공존, 경쟁과 반목이 이데올로기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미국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광풍은 냉전체제하에서 보수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해 “열정적 증오”를 표출한 사건이었다. 자유주의는 1973년 오일쇼크로 촉발된 세계경제 위기의 와중에 보수주의를 ‘흡수’하면서 “위대한 생존자”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태동했고,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노조 탄압 등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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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데올로기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이데올로기가 독자성과 순수성을 지닌 고정된 체계라는 인식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종전 후 자유주의는 반공으로 무장한 미국 등 ‘우파’와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북유럽 등 ‘좌파’로 갈라졌다. 공산주의는 1960년대 초 세계 인구 3분의 1에 달하는 13개 정권으로 세력이 커졌지만, 이내 소련과 중국이라는 양대 산맥에 파열이 생겼다. 홀로코스트나 아파르트헤이트 등 비극적 사건을 낳은 민족주의는 20세기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모든 이데올로기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여성에게도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으로,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소비에트가 내세운 양성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움직임으로 전개되었다.

영국 공산당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저자는 구소련의 붕괴를 “전적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내재적 불완전성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레닌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구상이 미흡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공산주의 국가 존재 자체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도 주장한다. 서유럽 정부가 공산주의가 자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을 막고자 자본 규제, 노조 승인 등의 태도를 취하면서 복지국가도 존속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어느 체제든 외부 또는 적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책에서 서구에 비하면 다소 적은 비중이나마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상황도 다뤄진다. 한국은 타이완, 싱가포르와 더불어 제3세계에서 “글로벌 시장에 운 좋게 참여한 덕분에 자본주의 경제가 번성”했지만 정치체제는 독재인 나라로 언급된다. 북한에 대한 설명은 좀 더 신랄하다. “김일성 숭배와 비교하면 스탈린 숭배는 오히려 정상” “김일성의 과대망상적 성격” “북한과 비교하면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차라리 느슨하고 자유롭다” 등이다. 일본의 파시즘이 정당보다는 협회나 압력단체의 형태를 취하며, 헌법 9조 삭제나 자위대의 군 승격 등을 꾀한다는 진단은 꽤 정확하다.

그렇다면 20세기의 이데올로기는 철지난 과거사에 불과할까. 분단된 한반도에서 우리의 삶은 여전히 이데올로기 대결의 자장 아래 놓여 있으며, 시시때때로 전쟁의 공포를 느낀다. 대처 총리 시절의 슬로건 ‘대안은 없다’나 ‘자조(自助)’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게 된 지금도 회자되는 수사어구다. 대처와 긴밀했던 레이건 행정부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그대로 가져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이데올로기 싸움을 부추긴다. ‘성’의 혁명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는 만연하다.

이 책은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세계사의 익숙한 장면들을 재배열하거나 재평가한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서와 차별된다. 이데올로기라는 얼굴 없는 주인공과 함께 역사 여행을 떠난다는 각오로 읽으면 좋겠다. 하지만 방대한 범위를 다루다보니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건너뛰기도 한다. 대공황 시기 뉴딜정책을 ‘미국적’이라고 짧게 언급하는 대목, 알베르 카뮈를 냉전적인 우파 자유주의자로 분류하는 대목 등이 그렇다. 한국을 터키 등 이슬람 군주정의 하나로 소개한 부분은 오역이라기보다는 경미한 실수처럼 보이지만 아쉽다.

김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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