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8> 이충렬 전기작가의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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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독자 마음에 등불이 되는 인물
- 그의 삶 복원하는 작가 이충렬
- 아동문학 거장 권정생을 쓰다
- 출생부터 유언장까지 훑는 작업
- 도서관 마이크로 필름을 뒤져
- 18세 첫 발표작 ‘여선생’ 발굴
- 사랑·건강·인간관계 등 기록
- 권정생의 모든 것 생생하게 전해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그럴듯한 인물을 대긴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인물의 삶을 얼마나 알까. 혹 업적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읽어 온 전기는 서양 인물 일색의 ‘위인전 시리즈’가 많았다. 한국문학에 전기문학의 자리가 제대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 자리를 한 권 한 권 한국 인물전기로 채워가는 이가 이충렬 작가이다. 올해 5월,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 선생의 전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낸 뒤 인터뷰와 강의 요청으로 작가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가 전기로 쓴 적 있는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서울 성북동)에서 작가를 만났다. 비가 많이 내렸지만, 관광객 몇 명이 옛집을 찾아왔다. 한옥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다리 쉼을 하는 그들의 표정이 편해 보였다.
전기작가 이충렬 씨가 서울 성북구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 마루에 앉아 최근 펴낸 전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삶의 가치와 정신을 만나는 ‘전기’
이충렬 작가는 1954년 서울서 태어났다.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올해 5월 영구 귀국했다. “국문과 3학년 때, 부모님 따라 미국으로 갔지만 늘 한국이 그리웠어요. 애리조나주에서 잡화점을 열어 장사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마음은 대한민국을 향해 있었지요.”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깊었고, 모국어 사랑은 한결같았다.
1994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로 등단했다. 국내 매체를 통해 단편소설, 르포, 칼럼도 꾸준히 발표했고 LA에서 격월간지 ‘뿌리’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역사·문화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사람’으로 이어졌다. 이충렬 작가가 쓴 책은 조선의 국보와 혼을 지키느라 전 재산과 삶을 바친 대수장가 전형필의 전기 ‘간송 전형필’,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전기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의 전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백충현 전기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김수환 추기경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 앞에 그들의 충실했던 삶을 되살려준다.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 선생 |
“우리나라는 평전, 자서전 같은 책은 많은데 전기는 드물어요. 대필 자서전의 경우, 독자의 관심이 전기류에서 점점 떠나게 했죠. 평전과 전기를 혼동하기도 해요. 평전은 그 사람에 대한 평이 있는 글이고, 전기는 삶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겁니다. 유명한 사람의 평전은 있을 수 있지만, 꼭 전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의 삶과 이루어낸 일이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그 생애를 본받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전기의 대상이고, 읽는 사람 마음에 등불 하나가 될 수 있죠.”
전기를 쓰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성장 일변도 길을 걸어왔어요. 이제 그와 병행해야 할 가치관을 세워야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사회에 긍정적인 업적, 자랑스러운 업적을 남긴 사람의 삶을 복원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추구한 삶의 가치와 정신을 만나게 하는 것이 전기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는 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접’이 없을 것을 각오했다고도 했다. “다행히 ‘간송 전형필’이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평전이라 하더군요. ‘혜곡 최순우’부터 전기라 불러주었어요. ‘이충렬이 있어 전기작가라는 분류가 생겨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권정생의 삶을 쓰다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이충렬. 2018. 산처럼 |
그는 권정생 전기 서문에 이렇게 썼다. “권정생은 한국 아동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다.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 같은 외국 작가의 번역동화를 주로 읽던 시대에 우리나라 창작동화가 자리 잡고 대중화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그의 동화는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이가 부자의 도움을 받아 행복해진다는 내용이 아니다. 가난과 불행의 근본적 원인을 알게 하고,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삶을 쓰기 위해서는 치밀한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남아있는 기록과 다른 관련 기록, 지인들 증언 등을 통해 연도별, 월별, 일별, 시간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사실에 맞게 복원합니다. 소설적 상상이 필요하지만 사실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감정이입 하되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그는 권정생 선생의 삶을 작품 발표 시기와 맞추어 썼다. 자료조사 과정에서 그는 ‘학원’ 잡지 독자문예란에 실린 열여덟 권정생의 소설 ‘여선생’을 결국, 찾아냈다.
“이오덕 선생께 보낸 편지에 ‘여선생’에 대한 대목이 있어요. 연도를 계산해 그 해 ‘학원’지를 전부 보았지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 중이더군요. 한 장 한 장 넘겨 보다가 1955년 5월호에서 소설을 발견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아명이 ‘권경수’인데, 잡지에는 ‘전경수’로 오자가 난 바람에 그동안 작품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권정생의 첫 지면 발표작 ‘여선생’ 전문은 전기에 실렸다.
“선생의 유언장에서 다시 태어나면 벌벌 떨지 않고 연애를 하고 싶다는 대목을 보았을 때, 선생께도 사랑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의 마음결에 어떤 사랑이 있었는지 중요하다 싶어 파고들었지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권정생의 사랑은 우리에게 ‘자연인 권정생’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이충렬 작가는 권정생의 건강과 생활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구와 교류했는지, 사회 분위기는 어떠했는지도 치밀하게 조사해 생생하게 전해준다.
권정생이 남긴 작품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다. 1969년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은 ‘강아지똥’은 심사 당시 ‘똥’자가 들어갔다 해서 처음에는 제대로 읽히지 않고 책상 한 편에 밀려있었다. ‘몽실언니’를 쓸 때는 주인공이 흔한 이름이면 실제 그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나 소녀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것까지 생각했다. 전기에 실린 사진도 귀하고 반갑다. 이충렬 작가는 전기 33쪽 사진을 눈여겨보라 했다. 1967~1968년 무렵 권정생이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권정생이 사랑한 어린이들이 있다. 많은 ‘몽실이’와 ‘점득이’들이다. 그 뒤에 선 권정생의 눈길은 카메라가 아닌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충렬 작가는 말했다. “이 사진을 발견했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몽실이들이 보였어요. 어린이를 위한 글을 썼던 선생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그 말에서 권정생이라는 등불을 켠 전기작가 이충렬의 마음도 느껴졌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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