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천황이 끝내 길들이지 못한 ‘경성 사람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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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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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자가 ‘현미경의 시선’으로 탐구한 식민지 수도의 생활사
“과거의 성찰은 흔적 지우기 아니라 공간의 지배자와 타자를 밝혀내는 것”
“과거의 성찰은 흔적 지우기 아니라 공간의 지배자와 타자를 밝혀내는 것”
토드 A. 헨리 지음, 김백영·정준영·이향아·이연경 옮김/산처럼·2만8000원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신발굽에 눌려 반질반질했지만 여전히 탄탄한 몸피를 과시하는 계단이었다.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108계단’을 오르며 미국인 역사학자 토드 A. 헨리(49·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역사학과 부교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돌계단은 전몰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일제가 세운 경성호국신사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일본 우익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려면 여기 경성호국신사 터가 딱 맞다고 생각한다. 천황이 주도하는 전쟁에 일체감을 가지도록 강요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야말로 일본의 우경화에 항의하는 시위 장소로 적당하지 않은가?”지난 1년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로 머물다 닷새 뒤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던 그는 계단 초입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아쉬워하다 조그만 안내 문구를 보고 그나마 반가워했다. 그가 귀국한 뒤 보름이 지나, 일본 식민지배와 공간정치를 다룬 저서 <서울 동화하기>(Assimilating Seoul·2014)의 한국어판 <서울, 권력도시>(산처럼)가 출간됐다. 일본 제국주의 사상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헨리 교수는 식민지배의 실상을 연구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일관된 톱다운(하향식) 통치 행태라기보다는, 조선인들을 황국의 충량한 신민들로 ‘동화’시키려는 지배의 전술로 이해했고, 이 전술이 일상의 물리적 공간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 관심을 가졌다. 2003년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경성일보> 등 각종 일본어 자료를 훑었고, 도시·건축전문가들과 틈틈이 서울 곳곳을 답사했다. 그의 손끝과 발끝을 거치며 70~100년 전 경성의 역사는 “총독부의 전용 회의실이나 엘리트 저자들의 책상머리”를 떠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궤적이 상호교차하는 ‘접촉지대’(contact zone)로 다가왔다.
일제 동화정책이 서울에 남긴 흔적을 연구한 <서울, 권력도시>의 저자 토드 헨리 교수가 지난달 27일 오후 경성호국신사 진입로였던 서울 용산구 후암동 ‘108계단’에 앉아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벚꽃이 활짝 핀 남산의 경성신사 입구를 담은 사진엽서. 안창모 제공.
1914년 도쿄 다이쇼박람회 홍보 포스터(왼쪽)를 본떠 만든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홍보 포스터. 일제의 동화주의적 산업의 메시지엔 늘 기생이 등장한다. 기생은 전근대적인 조선의 과거와 근대적인 일본의 현재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존재였다. 산처럼 제공.
‘서울, 권력도시’의 저자 토드 헨리 교수가 지난달 27일 남산의 옛 조선신궁 터에 서서 일제강점기 동화정책이 남산 일대에 남긴 흔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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