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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주말을 여는 책 | 서울, 권력 도시] 일제강점기 '공간'으로 읽는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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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22 11:32 조회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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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72639_P.jpg 토드 A.헨리 지음 / 김백영 외 옮김 / 산처럼 / 2만8000원

"참배를 한다는 것은 예를 갖추어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조선인들은 참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참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조선신궁은 그저 일본인들만을 위한 신사로 끝나고 말 것인가?"


새로 나온 책 '서울, 권력 도시'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오가사와라 쇼조는 이런 우려를 한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한국을 통치해왔던 조선총독부는 1925년 가을, 남산 위에 웅장한 신토(神道) 신사를 세웠다. 신토란 일본의 전통적인 독특한 신 관념에 입각해 형성되고 전래돼 일본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토속 신앙이다. 경성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의 수백만 거주자들이 이 장소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우려를 할 만큼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있었다.

동화 정책, 구체적 실행은

'서울, 권력 도시'는 일제 강점기의 서울을, 공간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1910년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은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무대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남산의 신토 신사, 경복궁 터, 근린 위생 캠페인 장소 등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충성스럽고 근면한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폭력적이고 논쟁적인 동화 정책 과정의 핵심 현장이었다. 이 책은 식민지 시기의 서울에 대한 공간을 분석함으로써 일제가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를 전개한 구체적인 양상을 정신적(spiritual), 물질적(material), 공중적(civic) 등 3가지 측면으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특히 공간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식민지 근대의 실상을 보다 흥미롭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공간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거리, 집 안 등 삶이 펼쳐지는 일상생활의 현장, 즉 '살아 있는 공간'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들이 빚어내는 왁자지껄하고 현실감 있는 일화들을 들려준다. 총독부 당국자들, 경성에 거주하는 일본인 유력자들, 친일파 조선인들, 민족주의 지식인들, 잇속에 밝은 각종 장사치와 모리배들로부터 기생들 소시민들 학생들 빈민들 고아들 소매치기와 날품팔이꾼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식민지 동화 정책이라는 하향식 일방통행 정책이 총독부 의도대로 관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관광의 장소에 그친 신사

우선, 총독부가 대한제국 시기의 황성을 어떻게 식민지 시기 경성으로 바꾸어갔는지 과정을 추적한다. 초기 식민지 계획자들은 대한제국 시기 지도자들에 의해 추진됐던 근래의 변화를 무시하고 공간을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사람과 상품의 순환을 용이하게 하려고 도로를 격자로 만들고 로터리를 설치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도시에서 작은 부분만을 바꾸는 데 그쳤다. 재정적 한계와 계속되는 저항으로 인해 경성은 불균등한 방식의 발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신토 신사와 관련 문화 활동이 천황가에 대한 충성의 감정을 주입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핀다. 많은 조선인들은 신토 신사를 숭배의 장소라기보다는 관광의 장소 정도로 취급했다.

총독부 건물이 신축된 터이면서 2차례의 중요한 박람회가 개최된 장소인 옛 경복궁 터와 관련해선 '물질적 동화'를 설명한다. 식민지 관료들은 정기적으로 박람회를 개최해 조선인 방문자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근대적 진보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근면 성실 검소와 같은 윤리를 강조했다. 예컨대 1915년 박람회에서 주최자들은 서구 건축물과 기계라는 보편적 표현 양식을 통해 근면의 이미지를 고취시켰다. 이들 서구 건축물과 기계는 궁궐의 공터와 신중하게 병치됨으로써 강력한 발전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1929년 대공황 기간에 개최된 조선박람회는 식민지의 발전을 전시해 관객들에게 감명을 주려는 의도가 강했다.

아울러 이 책은 경성 주민들의 삶에 주목하면서 위생 등과 관련한 캠페인들이 개인의 건강을 어떻게 다뤘는지 밝힌다. 위생 규칙과 관련한 경찰의 단속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공중위생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해방 이후의 서울은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함께 공공 공간은 천황가에 보다 충성하는 방식으로 재편됐다. '내선일체'라는 전시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고자 했다. 예컨대 갈수록 군사화됐던 신토 신사의 엄숙한 공간은 가미다나(집 안에 두는 작은 신사)를 설치하고 부적을 보급하는 방식으로 조선인 가정으로 침투했다. 이는 천황이 주도하는 전쟁에 더욱 강력하게 일체감을 갖도록 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서울이 공공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다룬다. 1995년 식민 통치를 상기시키는 옛 총독부 청사 건물이 제거됐다. 이 건물은 중앙청과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돼 왔다. 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자리에는 절반쯤 복원된 경복궁이 들어서 있다. 이 궁궐터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조선 왕조의 영광을 상기시키는 한편, 한반도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용도로도 부분적으로 사용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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