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유쾌한 일만 보도하라"… 은폐와 경시가 부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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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지음|이규원 옮김|산처럼|384쪽|2만원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해스컬의 의사 로링 마이너가 주간지 '퍼블릭 헬스 리포트'에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마이너는 초겨울부터 건강한 청년 수십 명이 '중증의 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당국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2017)를 쓴 미국 칼럼니스트 제니퍼 라이트는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 인구 최대 5%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당시의 미국 상황을 다룬다. 독감은 군부대로 옮아가 장병들을 겨냥했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사기 진작을 위한 법이 통과됐다. 미국 정부에 관해 불충하거나 모독적이거나 악의적이거나 독설적인 표현을 발언, 인쇄, 집필, 혹은 출판하면 20년 동안 수감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9월 초, 해군에서 유행했다. 9월 15일까지 600명의 군인이 입원했다. 그러나 당국은 사태를 은폐하고 위험을 경시했다.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9월 28일의 퍼레이드도 강행했다. 의사 하워드 앤더스가 퍼레이드의 위험성을 보도해 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10월 1일, 필라델피아에서 117명이 독감으로 죽었다. 그런데도 10월 6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질병 대신 유쾌한 일만 이야기하자"고 보도했다. 10월 10일엔 759명이 죽었다. 길거리에서 시체가 썩어갔다. 관(棺)의 수요가 급증해 가격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을 훔치기 시작했다. 어린이 시체는 마카로니 상자에 틀어넣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는 보건국장이 "질병보다 공포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사기 진작에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달의 치사율은 15%에서 40%로 치솟았다. 스페인 독감으로 미국인만 약 67만5000명이 죽었다고 여겨진다. 4년 동안 지속된 남북전쟁 때의 사망자 수보다 많다.
나병 환자들이 격리된 하와이제도 몰로카이섬에 들어가 환자의 붕대를 갈아주고, 농사와 요리를 가르치다 감염돼 숨진 벨기에 출신 다미앵 신부(神父)는 '최상의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예다. 저자는 "다미앵은 질병과 병자를 결코 혼동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질병과 벌이는 전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굳이 천재나 뛰어난 과학자나 의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고 썼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4/2020031400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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