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과학과 기술이 만든 ‘서양우위’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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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차 세계대전서 그 허구성이 폭로됐다
책은 기술의 혁신과 과학적 사고를 통해 확신한 유럽인의 우월 이데올로기가 해외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검토한다.
18세기 유럽의 해외 팽창 시기, 서양인들이 아시아·아프리카의 비서양인들에게 우월감을 가지게 된 핵심 이유는 기독교였다. 초월적 진리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신념이 우월감의 밑바탕이었다. 해외 팽창이 확대되고 19세기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과학과 기술이 종교를 대체하며 우월감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18세기 ‘혁신 클러스터’라 불린 수력 방적기와 증기기관 등 기계 발전에 따라 유럽인들은 높은 정신문명을 가진 중국·인도를 포함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비서양 문명을 능가했다고 확신했다.
과학과 기술 척도는 때로 인종주의와 결부됐다. 지은이는 “과학과 기술의 우수성에 대한 확신은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의 성취를 경멸하도록 촉구하고, 흑색·황색 인종에 대해 백색 ‘인종’의 선천적 우월성을 실증하려는 노력을 정당화했다”고 말한다.
18세기 영국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롱의 발언은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 중에서 기계기술이나 제조 등을 이해한 부족은 한둘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작업마저도 서투르고 형편없어서 오랑우탄이라도 어렵지 않게 할 정도였다.”
“아프리카인들은 인간 이하”라는 롱의 주장은 제임스 밀 같은 철학자들한테도 영향을 끼쳤다. 문자가 없어도 유럽인들이 놀랄 만큼 정확한 천체관측 장치를 만든 아프리카인들의 능력은 무시됐다.
책의 논의가 인종주의 환원론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서양인들의 기술과 과학에 대한 확신만으로도 자신들의 정복과 상업적 확장, 비서양 세계의 ‘뒤떨어진’ 사람들을 교육하려는 노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유럽인들의 확신은 도전받는다. 우선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의 기계를 매우 빠른 속도로 익혔다. ‘열등한 인종’은 선천적으로 유럽의 창조성과 물질적 능력을 따라올 수 없다는 통념에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1차대전은 이성 우위에 대한 유럽인의 신념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책이 서양의 우위 이데올로기의 이면과 허구적 측면과 관련, 핵심적으로 문제 삼는 부분이다.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 자화자찬했던 문명 심장부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은이는 “‘백인 국가들’이 자연과 그 밖의 인류를 통제하면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을 능력을 보증해주었다는 확신은 전쟁으로 그 허구성이 백일하에 폭로됐다” “전쟁으로 서양 합리성의 최고봉으로 간주됐던 과학을 타락시켰다”는 프로이드의 말을 전한다. 전쟁은 기계 발명과 과학 발견이 진보라는 신념이 망상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폭로한 계기였다.
하지만 전후 시기에도 과학과 기술은 여전히 성취와 능력의 척도로 여겨졌다. 과학과 기술을 적용한 대량생산으로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이룩한 미국에서 기계는 ‘단순히 기능적 대상이 아니라 미국의 미래를 나타내는 표상이자 상징’이었다.
미국의 경로는 불안정한 ‘저개발국’들이 ‘근대라는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로 간주되기도 했다.
책은 서양 근·현대사와 철학사 중 기술과 과학사를 따로 떼어 섞어놓은 듯하다. 지은이는 수많은 참고 문헌을 인용하며 서양인들의 과학·기술 척도와 우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김동광 옮김. 3만5000원
**기사 링크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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