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해적은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전사 <문명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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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바다〉
주경철 지음/산처럼·1만8500원
“근대는 바다에서 탄생해 폭력적으로 전세계를 휩쓸었다.”
<문명과 바다>는 바다의 관점에서 근대 세계의 역사를 항해한다. 오랫동안 고립돼 발전해 온 세계 문명권들이 15세기 이후 바다를 통해 어떻게 급속도로 연결되고, 그렇게 태어난 ‘근대’가 세계 곳곳 삶의 구석구석을 어떻게 뒤흔들고 바꿔놓았는지를 보여준다. 꼼꼼한 서양사학자이자 유쾌한 이야기꾼인 지은이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복잡한 사건들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새로운 역사 해석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그가 고른 주인공들은 콜럼버스나 중국 황제 같은 유명 인물들이 아니다. 밑바닥 선원들의 참혹한 삶, 해적과 노예, 원주민 여성, 설탕과 은, 옥수수와 고추, 사라진 언어들, 심지어 병원균까지 모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지난 500여년의 근대 역사가 만들어졌다.
근대의 첫 무대는 인도양이었다. 오랫동안 ‘지배자’ 없이 유라시아 대륙 각 지역이 소통하던 인도양에 15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나타나 처음에는 주요 항구를 거점으로, 이후에는 점차 내륙까지 ‘점에서 면으로’ 지배권을 넓혀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영토회복운동 이후 급속히 늘어난 ‘칼잡이’들이 골칫거리가 되지 않도록 방출시켜야 했고, 칼을 휘두르며 돈벌이에 나서는 이들의 ‘모험담’이 ‘신대륙’ 발견과 정복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세계화는 ‘폭력의 세계화’였다.
중국이 세계 최초로 화약을 발명하고도 불꽃놀이에나 썼다는 통설과 달리 이 책은 중국이 가장 먼저 총포를 발명했지만 1550년 이를 포기하고 칼과 창으로 되돌아갔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적수는 기동력 뛰어난 북방 기마민족들이었고, 초기의 조악한 총포는 이들을 상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정된 공성전이 많았던 유럽에선 뒤늦게 발명한 총포를 급속히 개선했고, 특히 배에 대포를 장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뒤 전세계 바다를 지배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인신매매에 가까운 속임수에 속아 배를 타게 된 뒤 굶주림 속에 중노동과 끔찍한 폭력을 겪어야 했던 선원들은 ‘최초의 프롤레타리아’였다. 마젤란의 세계일주에선 “선원들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비스킷, 썩은 물, 심지어 소가죽을 바닷물에 불려 먹으며 버텼지만, 괴혈병에 걸려 잇몸이 모두 부풀어 올라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끔찍한 항해에 저항한 일부는 해적이 됐다.
**기사 링크 www.hani.co.kr/arti/culture/book/344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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