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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춘향에게 칼 씌운 변사또....직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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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6 00:00 조회1,7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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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영조 때까진 여자에겐 안 씌워…곤장, 조선 대표 刑? 임란 이후 사용

사약, 공식형벌 아냐… 고위층 죽이는 수단











네 죄를 고하여라



심재우 지음|산처럼|344쪽|1만8000원



현대사회에서 고문은 불법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형(刑)을 확정하려면 피의자의 자백이 필요했으며 지금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고문을 할 수 있었다. 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쓰인 말로 조선시대에는 고신(拷訊)이라 불렀다.



도적을 다스릴 때 가한 모진 고문 중에 ´주리 틀기´가 있다. 죄인의 양 발목과 무릎을 꽁꽁 묶은 뒤 몽둥이 두 개를 정강이 사이에 끼워 양끝을 가위 벌리듯이 엇갈리게 틀어서 죄인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 고문이다. 주리를 틀다보면 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에는 기술이 필요했다. 주리 틀기는 17세기쯤 출현했다. 따라서 고려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주리 틀기 장면이 나온다면 모두 잘못된 사례다.








한말의 칼을 쓴 죄수들. 남자 죄수와 달리 여자 죄수는 목에 칼을 쓰고 있지 않다. 여자는 칼을 씌우지 않는다는 영조 때 규정이 잘 지켜지고 있는 모습이다. /산처럼 제공



조선시대에는 문신을 새기는 형벌도 있었다. 경형(�Y刑)이라 불리는 자자형(刺字刑)은 대개 도둑질한 자들에게 가했던 것으로 얼굴이나 팔뚝에 죄명을 새겨 넣는 벌이었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죄를 지어 평생 얼굴에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를 퍼붓는 말이다. ´절도(竊盜)´ ´도우(盜牛)´ 등의 글자를 새겼으며, 바늘 10여개를 묶어 살갗을 찔러 상처를 내고 먹물을 칠한 뒤 베로 그 부위를 싸매어 죄수를 3일 동안 옥에 가두었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네 죄를 고하여라´는 조선시대 형벌의 역사를 살핀다. 저자는 "조선은 당률(唐律)을 계승한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형법의 기본법으로 채택하여 나름의 제도적 체계성과 이념적 합리성을 유지했다"고 지적한다.



정조는 관리들의 형벌 남용을 막기 위해 각종 형구(刑具)크기를 통일한 ´흠휼전칙´(欽恤典則·1778)을 간행하여 반포했다.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곤장(棍杖)은 흠휼전칙에 따르면 5가지 종류가 있었다. 길이는 중곤(重棍)이 가장 긴 181㎝이며, 가장 짧은 것이 소곤으로 153㎝쯤이었다. 그러나 타격부만 보면 치도곤(治盜棍)이 너비 16㎝, 두께 3㎝ 내외로 제일 두껍고 크다. 곤장은 원칙적으로 군법을 집행하거나 도적을 다스릴 때 사용했다. 변방의 수령 등 주요 군사권을 가진 일부 수령을 제외하곤 고을 수령은 곤장을 쓸 권한이 없었다. 곤장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형장(刑杖)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임진왜란 이후에 사용됐다.



사실 ´조선왕조실록´ 번역자들도 ´태(笞)´와 ´장(杖)´을 곤장과 착각해 사용한다. 가느다란 회초리를 떠올리게 하는 ´태´는 길이가 1m 조금 넘고 지름이 1㎝가 채 안 됐다. ´장´은 태보다 지름이 약간 넓을 뿐 형태에 큰 차이가 없다. 배를 젓는 노와 같이 넓적하게 생긴 곤장은 타격 강도가 태·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또 볼기를 때리는 태·장과 달리, 곤장으로는 볼기와 넓적다리를 번갈아 치게 되어 있었다. 곤장은 중국에서는 쓴 적이 없는 조선의 독특한 형구였다.



또 다른 형구에는 목에 씌우는 칼, 일종의 수갑인 뉴(杻), 그리고 목과 다리를 감는 쇠사슬인 철삭(鐵索) 등이 있다. 마른 나무로 만든 칼은 길이가 172㎝, 무게 0.8~1.4㎏ 정도였다. 영조 때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여자에게 칼을 씌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춘향전´에서 감옥에 갇힌 춘향이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은 당시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수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춘향을 괴롭힌 변학도가 규정 따위를 중시했을 것 같지는 않다.



주지하다시피 성종의 계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폐비 윤씨, 숙종 때의 장희빈 등은 사약(賜藥)을 받아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약은 말 그대로 ´임금이 내리는 약´이다. 왕실 가족이나 지체 높은 고위 관리를 죽이는 데 임금은 최대한 예우를 갖추었으며 이때 사용한 것이 바로 사약이었다. 조선시대 중죄인을 처단하기 위한 사형 집행 방식으로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교형(絞刑·목 매달기), 참형(斬刑·목 베기), 능지처사형(陵遲處死刑) 등 3가지로 사약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약이 공식적인 형벌은 아니었던 것이다. 능지처사는 대역죄를 범한 자의 신체 여기저기를 절단하여 죽이는 극형이다. 조선에서는 수레에 죄인의 팔다리와 목을 매달아 수레를 끌어서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로 대신했다.



책은 이 밖에도 유배형의 등급과 유배지 선정, 조선시대의 소송, 사망 원인을 찾는 검시관, 정절이라는 이름 아래 자살을 강요받은 여성들의 삶 등을 전하고 있다. 전문 용어를 자제하고 평이하게 서술하려 노력했다. -신용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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