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박종현 기자의 대중과소통하는 학자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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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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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교수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는 작업이야말로 개별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허정호 기자
바다는 누구나 왕래할 수 있던 ‘공개된 도로’였다. 통치의 대상이었던 육지와 달리 이곳은 텅 빈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공격적 해외 팽창에 나섰던 근대 유럽에서야 바다에 통치권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20세기의 진리였다면, 미국 전략가 앨프레드 마한의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19세기의 생생한 진리였다.
그때도 유독 동양의 바다에는 주인이 없었다. 상업 활동이 왕성했던 인도양은 동양권 바다의 상징이었다. 인도양 주변은 하나의 큰집처럼 통합된 세계를 이루었다. 그만큼 공개된 장소였다. 인도양 언저리 말라카(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된 언어가 84개에 이를 정도로 상인들의 왕래가 활발했다.
#15세기 이후 ‘바다’가 근세 형성
동양에서 서양은 원래 말라카 너머 서쪽을 의미했다. 동양이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던 서양이 세계에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유와 소통의 통로였던 바다가 성격을 달리하게 된다. 15세기 바다로 출발할 당시 유럽은 중국과 인도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다.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이때의 유럽을 ‘프롤레타리아 대륙’으로 설명할 정도였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동양의 바다 진출은 평화에 기초한 상대방 문화 수용에 있었지만, 서양의 해외 팽창은 폭력성과 기독교 선도의 배타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15세기 이후 바다를 통한 급작스러운 소통으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주 교수는 우주의 시대라는 21세기에도 바다에 영향력이 없으면, 도태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최근 펴낸 ‘문명과 바다’(산처럼)에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갖게 된 한국인 학자의 객관적인 세계사 시각이 묻어난다.
그가 보기에 동양은 ‘잘난 바보’였다. 동양이 바다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슬림 가문 출신이었던 명나라의 정화는 15세기 초엽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인도양을 탐험한다. 인도양 연안의 30개국을 방문한 정화의 선단은 방문국과 원활한 관계 맺기에 주력했다. 정화의 범선과 중국문물의 세계전파 내용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입장식 행사에서도 다뤄질 만큼 중국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해상팽창에 나섰던 환관 세력이 무너지고, 유교 이념을 앞세운 관료가 득세하면서 ‘해양 제국주의’ 중국은 막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조선’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주 교수는 “조선은 건국 초기의 적극적인 정신을 잇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와 외국 문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조선은 초기에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고 봅니다. 1402년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유럽, 아라비아 지역의 모양과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외국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꺼렸어요. 세계가 바다로 나아갈 때, 한양으로만 관심을 뒀지요.”
표류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 일행을 14년 동안 잡아두었지만, 새로운 지식 하나 얻지 못했던 게 단적인 예다. 이는 일본과 비교된다. 당시 일본 나가사키의 지사는 하멜이 조선에서 탈출해 오자 각종 정보를 얻는다. 하루 만에 이들의 난파 과정과 조선의 여러 정보를 파악한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게 주 교수의 정리다.
“17?18세기 일본에는 네덜란드어를 번역해내는 사람이 500명이나 됐어요. 개인의 힘이 아닌 체제와 시스템의 힘으로 나라와 조직을 꾸려나갔어요. 이 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겁니다.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바로 전문가 그룹에 자문을 구하게 돼요. 가령 지금도 일본에서는 비상사태가 터지면, 총리는 즉각적으로 실무진은 물론 네트워킹 된 학자에게서 종합적 ‘맥’을 잡는 보고를 받게 되지요.”
임진왜란 때까지도 바다에서 우위를 보였던 조선이 점차 바다에서 멀어졌고, 세계사에서 뒤처지게 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문화 접변 쉬운 ‘주변’에서 새로운 기회 창출
희생 없이는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는 법이다. 해상에서는 이 원칙이 더욱 철저하게 통했다. 17세기 이전 해상제국을 건설한 포르투갈 사례가 그렇다. 16세기에 해외로 나간 포르투갈인은 10만명가량이었다. 당시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10%로, 남자 인구로만 보면 35%에 해당된다. 당연히 희생이 따랐다. 주 교수는 포르투갈의 성공 이유로 그 사회의 특징인 ‘경계’ 혹은 ‘변경’에서 찾는다.
“포르투갈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계지대였어요. 대서양과 지중해의 접점에도 있었습니다.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는 원동력은 대개 중심권보다는 변경에서 이뤄지기 쉽다는 가설이 가능할 거예요.”
동서양과 근현대를 넘나들며 세계사를 풀어내는 논리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주 교수와 인터뷰를 앞두고 만났던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런 말을 했다.
“세계 독자를 상대로 하는 한국 학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에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세계 경제를 저술할 수 있는 학자라면, 세계사를 논할 수 있는 학자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를 꼽고 싶습니다.”
우 교수의 이 발언을 전했더니, 주 교수는 마냥 겸손해 한다. “공학이나 생명과학 분야에서 그런 성과를 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꼽은 것은 과찬이에요. 독자에게 미안할 지경인데 ….”
#선진국일수록 세계사와 국제뉴스에 관심
겸손한 태도지만 그는 세계사 교육을 강조한다. 이에 “바쁜 세상에 굳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어깃장을 놓아 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강단 있게 나온다. “세계사를 제대로 접하지 않으면 국수주의로 흐를 염려가 있습니다. 세계사가 서양의 잣대로 들여다 본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또한 알아야 비판할 수 있어요.”
프랑스의 예를 들려준다. ‘똘레랑스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가 실은 무엇에나 ‘확실한 나라’라고 설명한다.
“프랑스는 문제의식이 강해요. 그 나라는 결코 한가한 이야기를 안 합니다. 가령 세계화, 지구화는 미국화로 귀결됐다는 시각이 정설이에요. 미국의 헤게모니는 여지없이 비판됩니다. 세계사를 접하면서 보편성을 확보하고, 자국 역사를 배우면서 담금질한 자부심이 배경이 된 까닭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주 교수는 다른 지역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존경받는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일본과 유럽은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어요. 우리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아요. 한반도 중심의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어요.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는 곤충의 촘촘한 더듬이에다가, 넓은 세상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해결하는 게 바로 국사이고 세계사이다. 심도 있는 국제뉴스에 대한 관심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온전히 공부하게 되면 서양의 역사를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게 된다.
“철학을 갖게 되지요. 가령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자랑하지만, 그 밑에 깔린 나라들에는 밤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주경철 교수는…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과 졸업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서구 주도의 ‘충돌의 세계화’ 대신 ‘평화의 세계화’를 주창한다. ‘공존의 삶’을 논했던 동양의 역할 공간 확대를 하나의 대안으로 본다. 이를 위해 애초 모두의 공간이었던 ‘바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서
‘문명과 바다’, ‘대항해시대’,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네덜란드—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언어 사중주’(공저), ‘문화로 읽는 세계사’,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등
■역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역사와 영화’, ‘유럽의 음식 문화’, ‘제국의 몰락’,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유토피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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