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탄생 100주년 맞아 ‘설정식 문학전집’ 출간… 해방기 천재 문인·햄릿 최초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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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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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로 활동한 오원(梧園) 설정식(1912∼1953) 탄생 100주기를 맞아 ‘설정식 문학전집’(산처럼)이 출간됐다.
설정식은 1949년 국내 최초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번역한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함남 단천 출생인 그는 연희전문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지만 일본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유니온대학에서 영문학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1940년 귀국한다. 광복 직후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에 발탁된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한 그는 카프의 이론가 임화를 통해 조선공산당에 입당한다. 표면적으로는 상반되는 듯한 위치였으나 미군정청 관리로 있으면서 미군에 의한 신탁통치가 민족의 현실적 문제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을 굳히게 된 듯하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는 혼탁한 해방정국과 맞물린다. 46년 장편 ‘청춘’과 단편 ‘프란씨스 두셋’을 신문에 연재하고, 48년에 단편 ‘척사 제조자’ ‘한 화가의 최후’를 발표했으며 장편 ‘해방’은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47년엔 시집 ‘종’, 48년엔 시집 ‘포도’ ‘제신의 분노’를 차례로 낸다.
“어찌할 수 없어/ 신문이 커졌다// 커가는 민주역량은 어찌할 수 없이/ 인민 의사의 표면장력은 이렇게 찢어진다/ 화살을 더 받아도 좋으리만큼/ 넓고 두터운 가슴같이 커가는 신문은/ 팽창하는 우리의 영토다// 다섯 여섯이 한꺼번에 얼굴을 파묻고/ 도도한 민주주의의 진행을 응시한다/ 열 스물의 눈이/ 백 이백의 탄압체포를 읽는다/ 그것은 진리 때문에 쓰러진/ 무수한 시체의 분포도이기도 하다”(‘신문이 커졌다’ 부분)
시인 정지용은 시집 ‘종’에 대해 “이 시집이 팔일오 이후에 있을 수 있는 조선 유일의 문예서인 것만은 불초 지용이 인정한다”라고 평하면서 그의 문학적 앞날을 축복했다. 50년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되자 북한 정권은 그를 ‘자수’ 형식으로 인민군에 자원입대시키고 문화훈련국에 근무토록 한다. 그해 12월 심장 발작을 일으킨 그는 헝가리의 지원으로 세워진 북한의 병원으로 보내져 건강을 회복한 뒤 51년 7월 개성 휴전회담 때 인민군대표단의 통역관으로 참가한다.
이때 종군기자로 개성에 파견된 헝가리 언론인이자 소설가 티보 머레이와 친분을 나누게 된다. 그의 도움으로 설정식이 병원에서 쓴 원고는 52년 ‘우정의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간된다. 이 원고는 중국 언론사 소속의 다른 외국 기자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영역된 후 헝가리어로 번역될 수 있었다. 머레이는 이 시에 대해 “형용사를 능란하게 활용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의 회화적 묘사를 통해 시적 아름다움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53년 7월 27일 재개된 휴전협정 때 설정식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해 3월부터 불기 시작한 남로당계의 숙청 바람에 휘말려 그가 미제의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설정식의 조카사위인 이화여대 김우창 석좌교수는 발문에서 “오원 선생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 영웅적 사상의 정열”이라면서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독립 자주의 민족이념, 자유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그것의 실천을 위한 사상적 순수성을 다짐하는 수사의 강렬함”이라고 말했다. 설정식의 3남인 한국일보 문화부장 출신의 희관씨가 엮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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