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북작가 설정식 탄생 100년… 문학전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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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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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번역작 등 모아 미국 유학한 엘리트 문인
휴전회담 때 통역장교 1953년에 임화와 함께 처형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해방 공간에서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로 왕성하게 활동한 월북작가 오원(梧園) 설정식(1912~1953ㆍ사진)의 작품을 한데 모은 <설정식 문학전집>(산처럼 발행)이 출간됐다. 그가 남긴 세 권의 시집 <종>(1947) <포도>(1948) <제신(諸神)의 분노>(1948)에 수록됐거나 해방 이전 발표된 시 60여 편, 장ㆍ단편소설 6편, 문학평론 4편이 1~3부를 이룬다. 4부에는 그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희곡 <하므??(햄릿)과 헤밍웨이 단편 ´불패자´, 토마스 만의 평론이, 5부에는 벽초 홍명희와의 대담과 시론 2편이 실렸다.
191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설정식은 193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미국 마운트유니언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유학한 당대 엘리트였다. 해방 후 미 군정청 여론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좌익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입대해 월북, 휴전회담 때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그러나 1953년 남로당계 인사 숙청 과정에서 ´미제 스파이´의 죄명을 쓰고 임화 등과 함께 처형되는 비운을 맞았다.
학창 시절 시, 희곡 공모전에 당선되는 등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였지만 설정식이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한 시기는 30대 중반이던 1946~1950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시와 소설 창작을 겸했던 그의 작품들이 이 4년 남짓한 기간에 쏟아져 나왔다. 자전적 내용이 주종을 이룬 소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는 당대 일급 시인이던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의 호평을 얻었다. 특히 김기림은 설정식의 첫 시집 <종>에 대해 "이색(異色)의 문(文)"이자 "새로운 장르를 우리 시에 더하였다"는 찬사를 보냈다. ´자유는 그림자보다는 크드뇨/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유실물이드뇨/ 한아름 공허여/ 아! 우리는 무엇을 어루만지느뇨// 그러나 무거이 드리운 인종(忍從)이어/ 동혈(洞穴)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민족의 감내를 살게 하라/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종´에서)
설정식의 조카사위인 문학평론가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발문에서 "독립 자주의 민족이념, 전 인민을 위한 자유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그것의 실천을 위한 사상적 순수성을 다짐하는 수사의 강렬함"으로 그의 문학세계를 규정했다. 곽명숙 아주대 교수는 전집 해설에서 "설정식의 시는 <논어> <장자> 등 한문 고전들은 물론 동서양 우화 신화를 현학적으로 해박하게 펼쳐놓기도 한다"며 "이런 난해함과 관념성은 한국 서정시에 낯선 주지적 특질을 보여주며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평했다.
전집에는 휴전회담 당시 설정식을 만나 친교를 맺었던 헝가리 출신 언론인 티보 메러이(88)가 1962년 파리의 잡지에 기고했던 회상기도 실렸다. 이 글은 특히 숙청 당하기 직전 법정에 선 설정식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하고 있어 귀중하다. "그의 고뇌에 찬 아름다운 얼굴은 심한 피로와 체념으로 차라리 무표정하였다. 재판정에는 조명이라고는 없었다. 오로지 눈빛만 반짝일 뿐이었다."(795쪽) 한국일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설정식의 삼남인 희관(65)씨가 이번 전집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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