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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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사라진 시점은 계유정난 이전, 외교관 출신 김경임 중원대 교수 몽유도원도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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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2-01 00:00 조회1,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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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과 주 튀니지 대사를 역임했던 김경임 중원대 교수가 의욕적인 책 한 권을 내놨다. 『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산처럼 刊)다. 세종 시대의 문화적 눈높이 속에서 「몽유도원도」의 탄생 과정과 작품의 사상적 의미를 추적하는 한편,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늘날 덴리(天理)대학에 소장되기까지를 꼼꼼하게 추적했다.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이 걸작의 ‘사라진 시기’다. 미술사학계의 통설은 안평대군이 제거되는 ‘계유정난’(1453) 직후에 「몽유도원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난이 있기 전에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연 그는 어떤 근거에서 ‘정난 전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먼저, 급박한 현실론이다. 계유정난의 밤에 안평대군의 집에서 「몽유도원도」를 빼돌리는 것은 정황상 어렵다는 것. 한순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안평대군의 집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다음은 작품의 뛰어난 보존 상태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외상이 거의 없이 온전한 상태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더구나 1960년경까지도 화려한 색채와 꽃술을 그린 섬세한 금채가 잘 보존돼 있었다.

이러한 점을 들어 김 교수는 “이 서화 작품이 많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처음부터 서화 보관에 최적인 장소에서 귀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보관돼왔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몽유도원도」는 계유정난의 난리 통에 급박하게 피신됐다기보다는 정난 이전에 이미 안전한 장소에 잘 보존돼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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