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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족보, 15세기에 제작 시작… 초기엔 내외손 함께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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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28 00:00 조회1,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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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시조를 기점으로, 그 뒤 출생한 자손을 일정한 형식과 범위로 망라한 가계 기록인 족보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집단 기억의 매체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 등을 역임하고 ‘승정원 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 등 교양서적을 집필하며 역사 대중화에 힘 써온 박홍갑 저자가 성씨와 족보의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색한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산처럼)를 내놨다. 현대 사회에도 족보는 조상, 집안이라는 형식으로 혼사나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있다. 조상과 족보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부정적 요소와 함께 긍정적인 요소가 병존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의 역사에서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부터지만, 실제적인 기점은 17세기 후반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족보는 18세기에 들어서야 완성된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또 초기 족보는 외손 당대만이 아니라 외손의 외손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외후손을 족보에 차별 없이 등재해 내·외손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가족의 지위를 인정했다. 족보는 합동계보로서 ‘창시보’를 드는데, 이는 인쇄물로 간행된 족보를 말하며 공동 발의와 공동 노력에 의해 편찬 간행됐다. 구체적으로 족보에 수록한 명단 및 관련 기사의 작성 제출, 편찬과 간행에 들어간 경비 역시 공동 부담이 원칙이었다. 또 족보의 형태는 개인 단위의 조상을 밝힌 가승(家乘)류, 본인을 기준으로 종적인 조상 세계를 계보화한 세계도(世系圖), 횡적인 자녀와 내 외손의 파계를 정리한 족도(族圖) 등 초기족보에서 8촌 이내 내·외손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록한 내·외 자손록, 내·외손을 동일하게 추적해 수록한 내외종합보 등의 형태로 변화해갔고, 이것이 오늘날의 족보 형태인 합동계보로 이행했으며, 이것이 다시 수록 범위가 성관(姓貫) 전체를 포괄하는 대동보(大同譜)로 진화했다.



이처럼 저자는 족보가 탄생한 초기 형태부터, 시대 변화에 따른 족보의 진화는 물론 족보를 둘러싼 사회 문화 현상, 족보의 허상과 실재 등을 살펴보며 족보가 단순한 생물학적 계보를 추적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봤다. 한국 고유의 토착전통과 중국의 유교식 습속이 혼합돼 있는 족보는 그 자체가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이다. 150여 컷에 이르는 컬러 도판이 족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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