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편전쟁 승리한 영국, 산업 스파이 왜 파견했을까…『초목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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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전쟁/세라 로즈 지음/이재황 옮김/산처럼 펴냄
1729년 청나라 황제는 중국 내에서 아편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아편 밀수는 계속되었다. 영국은 자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팔았고, 중국은 차(茶)를 영국에 팔았다.
아편과 차를 팔고 사는 과정에서 영국은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당시 영국 정부의 국고수입 10분의 1이 차의 수입과 판매에 매긴 세금이었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영국은 철도와 도로를 냈고, 공무원의 봉급을 주었고, 군대도 키웠다. 인도는 아편을 공급했고, 중국은 차를 공급했으며, 영국은 이 두 가지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문제는 아편중독이었다. 자국민들이 아편 중독에 시달리자 중국 정부는 아편 판매를 금지했고, 금지령이 지켜지지 않자 무역항 광저우의 외국인 숙소를 뒤져 아편을 몰수하고, 영국인을 체포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200년 가까이 중국에 아편을 팔고, 그 대금으로 차를 샀으며, 그 과정에서 생긴 이익과 세금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중국이 아편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영국은 전 국민의 기호품인 차를 수입할 막대한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또한 세금수입 감소로 경제가 흔들릴 판이었다. 영국은 중국에 싸움을 걸었고, 승리했다. 영국은 계속 아편장사를 할 수 있었고, 덤으로 홍콩을 얻고 개항장도 5개나 늘렸다. 여기까지는 1839년부터 186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발발한 아편전쟁의 배경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다.
이 책은 ‘아편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아편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와 차의 원료인 동백나무를 두고 영국과 중국이 벌인 총성 없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영국은 중국이 양귀비를 합법화하고 직접 아편을 생산할 것을 우려했다. 그렇게 된다면 인도-중국-영국으로 구성된 경제 트라이앵글에 구멍이 생길 것이고, 영국은 더 이상 차를 수입할 돈도 마련할 수 없고, 전쟁비용도 댈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국내의 공공사업 역시 중단되어야 할 처지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는 구조를 뜯어고치고자 했다. 자국령인 인도의 히말라야 산에서 차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히말라야 산간은 중국의 최고급 차 산지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고도가 높고 땅이 비옥하며 안개가 많아 차나무에 수분을 공급하고 뜨거운 햇볕도 막아주었다. 서리도 자주 내려 더 복잡하고 강렬한 차 맛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문제는 차 씨앗과 묘목이었다. 인도 아삼지역에서도 차나무가 자랐지만 품질면에서 중국산 차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차나무 씨앗과 재배법을 가져와야 했다. 그러나 공식루트로 될 일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국의 주력 수출품을 소비하는 국가에 그 생산기술을 넘겨줄 바보는 없다. 영국은 도둑질을 하기로 결심했다. 산업 스파이를 출동시켰던 것이다.
로버트 포천. 이름난 식물 채집자로 영국이 중국에 파견한 산업 스파이였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영국인은 몇 개의 개항장에서 무역이 허락될 뿐 내륙지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로버트 포천은 법을 어기고 황산과 우이산 등 중국 내륙의 유명한 차 산지들을 돌아다니며 차 묘목과 씨앗을 훔쳤다. 나중에는 차 제조과정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중국의 전문가까지 빼내오는 역할을 맡았다.
이 책은 로버트 포천의 산업 스파이 활동기록이다. 책 제목을 ‘아편전쟁 뒷이야기’로 하지 않고, ‘초목전쟁’으로 정한 이유다. 전체 이야기가 ‘도둑질’에 관한 것인 만큼 스릴 넘친다. 도둑질 대상이 차이고, 주인공이 식물학자여서 차에 관한 여러 가지 상식과 전설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 등 격변기 중국의 모습은 덤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이 책의 또 하나의 무대인 인도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세포이 반란’은 어떻게 전개됐는지 등을 알 수 있다. 319쪽, 1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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