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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네 죄를 고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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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23 00:00 조회2,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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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네 죄를 고하여라 :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중세사2분과)



최근 들어 부쩍 TV 드라마 가운데 사극이 인기다. 그런데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고증이 잘못된 부분이 종종 눈에 띄는데, 특히 죄인을 문초하거나 형벌을 집행하는 광경은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조선 후기에나 나타난 길고 넓적한 곤장(棍杖)이 조선 전기, 심지어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보이는가 하면, 발바닥을 지지는 고문인 낙형을 가할 때 허벅지나 복근을 지지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일일이 지적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에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을 거둔 SBS 사극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예상한 대로 잘못된 연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극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5세기 세종 임금 때에는 사용된 적이 전혀 없고 조선 후기에 도적을 다스릴 때 쓰던 고문인 주리 틀기가 버젓이 등장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단순한 역사드라마의 사실 고증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의 전통 법과 법률문화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조선시대 법집행 모습 하면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 재판, 가혹하기 그지없는 무자비한 형벌 남용 등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조선시대 법 운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문제는 법에 대한 이해가 당대 사회와 문화를 읽어내는 데 중요한 코드임에도 조선시대 역사 연구에서 법률문화에 관한 내용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로서는 선진적 법률인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따르던 조선의 법률체계는 동 시기 유럽의 그것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합리성과 일관성을 지녔지만 지금까지 평가 절하되어 왔다. 그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신체절단형인 능지처사(凌遲處死)와 같은 몇몇 잔인한 육형(肉刑)의 존속, 20세기 전후 서구 제국주의의 동양 사회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맞물려 있다.

이 책은 그간의 편견을 걷어내고 좀 더 객관적 시각에서 조선의 형벌과 법률문화를 새롭게 조명해보았다.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經國大典)』 등 기본 사료 뿐 아니라 당시의 사건 사고가 담긴 수사보고서, 형사판례집 등을 분석하여 조선시대 죄와 벌의 사회사를 해부해보고자 했다.

또한 단순히 조선의 사례만 제시하는 대신에 동 시기 중국, 일본이나 유럽의 형벌, 고문 방식, 감옥, 형구의 생김새 등에도 시야를 확대하여 비교사적 관점에서 조선의 형벌문화가 갖는 의미와 위상을 짚어보았다.

압슬형, 낙형, 자자형, 주리 틀기, 능지처사 등 이름만 들어도 간담 서늘한 형벌과 고문의 실제 집행 방법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사형 집행인이었던 망나니 중 일부는 사형수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감옥에서 고참죄수가 신참죄수를 괴롭히던 기상천외한 가혹행위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성리학적 가치 규범이 확산되면서 정절이라는 이름 아래 자살을 강요받았던 조선 여성들의 삶은 또 얼마나 기구했는가?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사고, 형장 풍경을 세밀히 살펴보고자 한 필자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흥미를 끌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법률문화란 프리즘으로 당대 사회상을 분석함으로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과 이를 운용하는 권력의 속성을 파헤쳐보려는 필자의 의도도 이 책에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집필 과정을 간략히 이야기해두고 싶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시대 범죄와 형벌을 둘러싸고 전개되어온 한국의 법률문화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기획한 것으로,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의 ‘죄와 벌의 사회사’ 코너에 4년 여에 걸쳐 연재해 온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여러모로 부족한 필자의 글이 연재될 수 있도록 웹진의 한 코너를 마련해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님, 웹진위원장님 등 집행부 여러분, 그리고 원고 연재과정에서 수고해 준 웹진간사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본 책의 출판비 일부를 지원해주었다는 점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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