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서평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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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소통의 정치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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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11-06-15 00:00 조회1,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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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x0304님의 서평입니다.

**원문보기 knox0304.blog.me/120129906597










얼마 전 <승정원일기> 국역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완역되려면 앞으로 30년은 걸려야 된다는 말이 기억난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288년간(인조~순종)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기록한 것이니, 전 세계 역사상 이런 유형의 이렇게 집요한 역사 기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왕조가 무려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겠지 싶다.


이 책은 <승정원일기>가 어떤 기록인지 알려주는 일반인 대상의 친절한 안내서라고 보면 되겠다. 동시에 시대는 달라도 사람(사회)의 본질적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바 없다는 상식을 흥미롭게 일깨워준다. 분명히 과거를 읽고 있는데 느낌은 고스란히 현재를 투영하고 있다.


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새삼 느끼는 두 가지는 이렇다.


첫째, 조선의 국가적 시스템이 새롭게 보인다. 교과서를 보면 지배층은 매일 싸움만 하고, 백성들 갈취하기에 바쁘다. 각종 제도는 항상 모순에 휩싸여 있고, 개혁은 대개 용두사미로 그친다. 금방 망해야 정상일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소개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조선은 그렇게 몰상식하고 무능한 나쁜 나라가 아니다. 사람 사는 상식이 존중되고, 부당한 것은 어김없이 공박받는 그런 시스템의 사회였다.


사방에서 관찰하며 써대는 구조는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요즘, 인터넷에 잘못 오르면 순식간에 매장되기 십상인데, 그 시대도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아니, 그때가 더 에누리 없다는 생각이다. 인터넷은 와글와글 대다가 금방 잊혀지고 마는데, 조선에서는 까딱 한번 잘못했다가는 수백년 필주(筆誅)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니 지배층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는 임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둘째, 조선의 다양함이 새롭게 눈에 띤다. 교과서 속의 조선, 수업시간을 통해 비춰지는 조선은 대개 정치와 각종 제도의 딱딱한 서술로서 표현된다. 사회와 문화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기는 하나, 그것 역시 피상적이다. 그러다보니 조선의 역사상은 왠지 눅눅하다. 지금의 학생들이 느끼기에 거리감이 있고, 뭔가 접촉점이 없다. 수업을 어렵고 따분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의 조선은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각양 각색의 <사람>이 툭툭 튀어나온다. 친근하고 흥미로운 다양한 군상들이 사회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시대만 달랐지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날 것의 그 모습들이 교과서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는 게 정말 유감이다. 쉽게 말하면 교과서가 지나치게 도식적 틀(이론) 속에 갇혀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사람이 실종된 역사가 과연 무슨 재미가 있겠고, 무슨 감흥을 일으키겠나.


참고로, 책에 소개된 오늘날과 꽤나 비슷한 그 시대의 사례 몇 개를 적어본다.


사례1> 일부 대학교에서 가학적인 신입생 길들이기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다음과 같은 대목 때문이다.


"선비가 새로 대,소과에 합격하면 4관(館) 고참들은 그들을 신래(新來)라고 지목합니다. 그리하여 합격발표 전부터 4관에서 일정별로 신고하는 관례를 두고, 네 관청에 합격자를 나누어 소속시킨 뒤에는 회자(回刺)와 면신(免新)을 행하게 하는데, 갓을 찌그러뜨리고 옷을 찢는 등 온갖 수모를 주면서 갖가지 골탕을 먹입니다. 이런 일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로 근거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금지시키라는 명령까지 있었지만, 지금껏 폐단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현종 3년(1662) 2월 19일>


사례2> 뉴스에 흔하게 보도되는 짝퉁 상품, 위조 수표, 위조 자격증, 위조 증명서 등등, 이것 역시 유구한 연원이 있는 우리나라의 또 다른 전통들 가운데 하나였다. 기가 막힌 손재주와 잔머리인데,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사람사는 사회의 명암이 있는 그대로 제시되고 있으니 더욱 현실적이다.


"요즘 인심이 옛날 같지 않아 교묘한 속임수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역관 김경희란 자는 전해오는 여러 족보를 긁어모으고 사사로이 활자를 주조하여 경외에 신역(身役) 면하기를 도모하는 자들을 유인해 사대부가의 족보에 마음대로 올리는데, 혹 책장을 칼로 오려낸 후 인쇄한 것을 갈아 끼우거나, 아니면 아들이 없어 가계가 단절된 파를 모았다가 작명(作名)으로 빈칸에 채워넣고, 신역 면하기를 도모하는 자로 손을 빌려 간사한 술책으로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벌어들여 살림밑천으로 삼으니, 남을 속여 이익을 도모하고 윤리와 풍속을 어지럽히는 모양새가 예사 문서를 교묘하게 속여 이용하는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승정원일기, 영조 40년(1764) 10월 19일>


사례3> 지난 겨울 구제역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300년 전 전라도 강진에서도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다. 그 때는 소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가격이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전라감사가 서목을 올렸다. "강진에서 보고하기를 우역(牛疫)이 갑자기 발생하니 전염되어 죽은 소가 50여 마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또한 그 고기를 먹고 죽은 자도 거의 11명이나 된다고 하니 매우 참혹한 일입니다." <승정원일기, 현종 원년(1660)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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