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서평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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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교양서, 『문명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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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처럼
작성일11-06-15 00:00 조회1,7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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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mask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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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지음, 2009





 



좋은 역사서를 찾기 어렵다. 사람들이 역사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생생하게 꾸미려다 보면 과장이 개입되고, 저자의 상상과 사료가 뒤범벅이 되어 소설처럼 되어 버린다. 애초에 치밀한 사료연구에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을 법한 상황을 복원하고 삶의 진실을 담아낸다면 좋은 역사소설이 되겠지만,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책의 상당수는 사실을 담은 역사서도, 진실을 담은 소설도 되지 못하였다.



주경철 교수의 글이 그래서 소중하다. 주경철 교수는 어떤 대상을 세밀하게 복원해 내면서도 과장과 거짓을 섞지 않는다. 저자 자신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기에 문체가 과장되지 않으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야를 넓혔다 좁혔다 반복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해석상 사견을 밝히기를 주저하지는 않지만, 다른 견해의 논거까지도 역시 상세히 소개하기 때문에 폭력적이지 않다.



문명과 바다는 같은 저자의 대항해시대를 읽기에 앞서 예열하는 기분으로 읽어도 좋겠으나, 문명과 바다 역시 한 권의 완결된 책이어서, 이를 읽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상적인 부분



우리나라에서도 화교들이 꽤 심한 압박을 받아서 기를 못 펴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고,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종종 화교에 대한 약탈과 학살이 벌어지곤 했다. (39쪽) ; 근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화교에 대한 테러에 대해서는 박노자 등도 소개하고 있다. 주경철의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화교에 대한 테러, 나아가 다른 민족 공동체에 대한 테러가 빈번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민족공동체에 대해서는 어떠했는지, 그것이 근대의 특징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성에 해당하는 부분인지는 더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쪽이 14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결국 알아내지 못한 것들을 단 하루 만에 모조리 파악해내는 일본 관리의 능력이 실로 인상적이다. 사실 이것은 어느 한 관리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그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이다. (58-59쪽) ;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개항이 불과 십몇 년 차이에 불과하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17세기에 우리가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일본은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와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 차이는 거의 이백 년이 넘는다. 일본이 세계와 소통을 하는 동안 우리가 그로부터 고립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더 연구해 보아야 하겠지만, 이제 세계와 완전히 열려 마음껏 교류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가 어떤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교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해외팽창은 모험 성격이 큰 사업이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튼튼한 사업기반을 갖추고 있는 상인들로서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외 탐험을 먼저 나서서 할 이유가 없었다. (중략) 근대 초의 과감한 해외 팽창사업처럼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는 원동력은 대개 중심권보다는 변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83쪽) ; 근대세계체제에서 우리나라는 주변부에 있"었"다. 지금은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세계화시대에 이제 세계체제 속에서 중심인지 주변부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가 중심에 있지 않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주변부에 있기 때문에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지는 않을까?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올바른 일이어야 할 뿐 아니라, 우선 자기 스스로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중략) 하느님의 뜻을 세계 만방에 펴는 이 거룩한 일은 무력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며, 종교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정의로운 일이어야 한다. 이럴진대 신대륙 지배가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는 일이라는 정당성의 확보는 결코 부차적인 사안이 아니었다. (113쪽) ; 우리나라는 세계 초강대국이 아니며, G2니, G7이니 하는 모임에 끼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초강대국의 자기정당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과 이익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논리는 상대방을 스스로 모순에 빠뜨리는 것이다.



교과서 상으로는 에스파냐령 아메리카, 프랑스 식민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또 지도상에 광범위한 지역을 그런 식으로 표시하지만 사실 그것은 왜곡된 표현이다. (120쪽) ; 마찬가지로 지도상에 광범하게 색칠한 한나라의 영토, 당나라의 영토, 원나라의 영토, 그리고 고조선의 영토, 고구려의 영토 모두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 지역에서 과연 지금 우리가 행사하는 것과 같이 공권력을 행사했을까? 골목마다 파출소를 설치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인구조사를 통해 국민들을 장악하고, 조세를 징수하였을까?



해적을 멋있게 그리는 것은 오늘날 갱스터 영화에서 깡패들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과 같다. (181쪽) ; 절묘한 비유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시작되기 이전에 우선 자체 안에 노예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186쪽) ;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은행은 은을 취급하는 점포라는 뜻이 된다. (중략) 중국에서 오랫동안 은이 중심화폐 역할을 해왔으므로 우리 말에 은행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 (236쪽) ; 얼마 전에 아는 이가 은행이 왜 은행이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적절한 대답이 될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는 조선의 인삼 수출을 저해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일본이 국가정책으로 삼을 자체 재배하기 시작했다. (중략) 둘째, 1720년경에 북아메리카에서 산삼이 발견됐다. (중략) 고려인삼에 비해 값이 5분의 1에 불과한 아메리카 산삼이 들어오자 인삼 가격이 폭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254쪽) ; 1720년경이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숙종~영조 시대이다. 이 당시 개성상인들은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웠을 아메리카에서 산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의 수입이 감소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카우리 조개는 작고, 형태가 단일하고, 상대적으로 희귀하므로 화폐 재료로서의 특징들을 다 갖추고 있다. 게다가 모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중략) 카우리는 원시적인 화폐라는 느낌을 주기 쉽고 또 이에 대해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부끄러운 과거의 잔재로 기억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이는 결코 원시화폐가 아니었다. (261쪽-263쪽); 우리가 어릴 때 보던 책에서 과거에는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하였다고 하였을 때, 이는 우리가 먹다 버린 흔한 조개껍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의 구체성이 절실하다.



냉장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변질된 고기의 상한 맛을 숨기기 위해서 강한 향신료가 필요했다는 과거의 설명은 이제 부정됐다. (중략) 후추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찾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매운 맛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다. (273쪽) ; 오늘의 기준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우리가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먹는 것을 보며 기겁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있다. 엄청난 양의 소금을 뿌린 김치를 먹는다는 사실이 이백 년 후에는 기이한 풍속으로 깅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품질좋은 통배추가 널리 보급된 것은 대체로 1800년 이후의 일이다. (중략) 배추김치는 그야말로 근대세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76쪽) ; 우리는 500년에 걸친 조선이라는 사회를 기술적으로 정체된 시대였다고 착각하기 쉽다. 때문에 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이라면, 그것이 1400년이든 1900년이든 우리의 전통이었다고 단정짓기도 쉽다. 당장 배추김치만 하더라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맛보지 못했던 음식이란 말이다.



1582년(덴쇼天正 10)년에 다른 신자들과 힘을 합쳐서 10대 초반의 소년들을 로마 교황에게 파견하기도 했다. 8년 반에 걸쳐 유럽을 여행한 이 소년사절을 천정견구소년사절天正遣歐少年使節이라 한다. (344쪽) ;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일본은 10대 초반의 소년들을 유럽에 파견하였다.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앞의 연설문은 인디언들의 심성이 아니라 현대 환경론자들의 염원을 나타내는 가짜 문서이다. 실제로 인디언들이 자연에 대해 어떤 체계적이고 명백한 관념을 만들어가지고 있었는지도 불확실하다. (370쪽) ; 시애틀 추장의 이 연설문은 우리 나라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그 글이 오늘날의 입장에서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거리의 지식이 횡행하는 이 때, 사실의 옥석을 가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 숲이 사라져가면서 생겨난 특기할 만한 현상 중의 하나가 먼 이국의 숲이 우거진 섬을 이상적인 낙원으로 상정하는 낭만주의 경향이다. (376쪽) ; 때로는 타자에 대한 지나친 동경도 몰이해와 자기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다.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서구 문명에 대한 비난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동정만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우리 앞에 펼쳐질 지구촌의 미래는 기계적으로 정해진 길을 좇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후손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397쪽-398쪽) ; 새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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