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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아동문학가 권정생이 걸어간 길.. 리뷰 덧글 0 | 조회 326 | 2018-07-12 00:00:00
관리자  
▲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 산처럼

내가 언제부터 동화를 좋아했을까? 물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도 읽었지만 내 마음을 흔드는 느낌으로 읽은 건 대학생 시절부터였다. 교회 봉사 활동으로 매주 방문한 아동 복지 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은 ‘창비아동문고’가 그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동화와 동시를 진지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읽었던 이원수와 마해송 작가 등의 동화에서는 힘든 역사에서 상처를 입은 채 걸어온 어린이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읽지 못했던 행간에 담긴 의미를 본 것이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뒤흔든 동화들이 있었다. 바로 권정생의 동화집 <강아지똥>에 실린 단편들과 장편동화 <몽실언니>다. 아동문학에 흔히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닌 ‘똥’과 역사의 희생양들과 약자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동화였다. 당시 5공의 어두운 현실과 동화 속 상황이 겹쳐 보였고, 시설 아이들은 불행한 주인공들의 운명에 감정 이입하며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일까 내 책장에는 권정생의 동화와 그림책 여러 권이 꽂혀있다. 작년에는 권정생이 평생 의지한 ‘이오덕’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을 읽기도 했다.

2017년이 권정생의 10주기라 지난 1년간 여러 행사가 있었고, 그의 전기가 나왔다는 소식도 들렸다. 전기문학을 주로 하는 ‘이충렬’의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다. 전기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간 작가의 삶은 문학 그 자체였고, 작품 집필에 임한 모습은 구도자 같았다. 책의 구성을 분석하면, 문학인으로 걸어간 그의 삶을 씨줄 삼아 시기별로 그렸고, 고된 역사에서 고통받는 약자의 이야기를 쓰게 된 요인들과 거기에 담긴 권정생의 역사관과 철학을 날줄로 녹였다.

권정생의 삶은 문학 그 자체

전기(傳記) 문학이기 때문에 글의 순서는 권정생이 살아간 삶을 시기별로 차례로 그렸다. 시골교회 구석방을 지킨 문학청년 시절부터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써 내려간 존경받는 작가 시절. 말년에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려 한 어른의 모습 등 그의 평생은 문학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들을 청년 시절의 등단 과정, 중년의 출판 과정, 말년의 집필 과정 등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권정생의 정규 교육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런 그의 문학 스승은 어머니와 가족들, 고향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책이었다. 그가 문학을 꿈꾸고 전문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등단한 과정은 문학인을 꿈꾸는 요즘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점 하나 단어 하나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가난해서 원고지는커녕 습작을 적을 종이가 아까워 구상을 깊이 한 다음 꾹꾹 눌러 써 나간 모습을 그렸다.

그는 지도를 받고 첨삭을 해줄 스승이 없었지만 지방 신문 신춘문예 심사평을 참고했다.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최종심에 올라 평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의견이었지만 아무런 조언도 들을 수 없었던 권정생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고 한다.

수년간의 도전 끝에 <강아지똥>이 한 문예지에 당선이 되어 정식 동화작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이 잡지에 간간이 원고를 실었고 그의 작품에 감명받은 평생의 선배 혹은 친구인 ‘이오덕’이 찾아와 권정생과 교유를 하게 된다. 이후 이오덕은 ‘이원수’ 등 아동문학가에게 그를 소개하고 출판사에 출판도 의뢰하는 등 동화작가 권정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동화가 기존 아동문학과는 결을 달리하고 문학성과 시대성도 담고 있어 가치 높은 작품이라고 출판사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그러나 시대 비판이라는 민감한 얘기를 담고 있어서 정부의 주목을 받아 출판은 미뤄지거나 취소되었다. 그래도 이오덕과 권정생의 가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그의 책이 한 권, 두 권 출판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나온 <몽실이>는 교육부 ‘추천도서’가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책이 나오기 시작하니 권정생은 열정적으로 써 나갔다. 작품의 배경은 언제나 최근 역사였다. 일제 강점기, 형제 부모가 총부리를 맞댄 6·25 전쟁, 어렵던 60년대, 암울했던 70년대와 80년대···. 이런 역사적 배경에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자라면서 겪은 전쟁통 이야기, 어렵던 시절 시골 마을에서 본 이야기 등을 소재로 담았다. 주인공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나 약자였던 어린이들과 여성들이었다. 이 모든 걸 담으면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

살아 숨 쉬는 작품을 쓰기 위해 아픈 몸으로 고향 마을 곳곳을 다니며 굽이굽이 간직한 이야기를 발굴했다. 안동지역 사투리와 동식물의 토속 이름들을 채집했다. 원고지 30매를 쓰기 위한 취재만 몇 달을 하기도 했다. 머리로 쓴 동화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쓴 동화였다는 것이 와 닿았다. 그의 동화를 읽으면 왜 아픈지, 아픈데도 왜 희망이 보이는지 이해가 되었다.

▲ 생전의 권정색 작가 / 권정생 어린이재단

고통을 이기게 한 정신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에 반복해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 알 수 있는 그의 삶이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가난했고 아팠다. 아팠기에 가난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말년은 인세가 많이 누적된 시기였다. 그래도 그는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이오덕과 나눈 편지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아픔과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희망을 노래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이다. 평생 교유한 지인들이 경제적 도움을 주려 해도 마음만 받으려 한 그의 모습을 책에서 그려내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원고료를 받아 약간의 식량과 약을 구하곤 기뻐하는 모습. 좀 더 많이 들어오면 동네 청년들과 할머니들에게 베푸는 모습. 노년에 더 많은 돈이 들어오자 통장의 반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모습. 모든 인세를 북한의 어린이들과 이 땅의 가난한 어린이를 위해 쓰라는 자필로 쓴 유언장. 평생 가난했지만 당당하게 살아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프고 가난한 가운데에서 그가 위로를 받은 곳은 교회와 기독교였다. 권정생은 젊은 시절부터 시골교회 구석방에서 사찰 집사로 종지기로 살았다. 도시로 나간 자녀들을 그리며 머리 숙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위해 먼저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를 위한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고통받는 약자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기독교 정신을 담았고 성경에서 모티프를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시골교회는 약자를 위한 곳이었으며 권정생의 주변에는 시대에 맞선 목사들이 많이 있었음을 얘기한다. 그의 주요 작품이 그런 교회의 주보나 회지에 실린 것을 보면 그렇다. 직접 재배한 곡식으로 헌금을 하던 60년대와 70년대 시골교회를 추억하며 이제는 장에 나가 돈으로 바꿔와 헌금 하라고 가르치는 교회의 모습에 씁쓸해한 권정생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말년에는 안동지역의 카톨릭 단체와 서울의 불교 잡지와도 교유하는 모습을 그렸다. 시대의 아픔을 위해 목소리 내는 곳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런 그가 특별히 마음을 두는 곳이 있었으니 분단 현실과 북한의 어린이에 관한 관심이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통일 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칼럼과 에세이를 쓰곤 했다.

1988년 ‘전대협’은 8월 15일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열겠다고 했지만, 노태우 정권은 허가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권정생이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남북한 학생들은 꼭 만나야 합니다! 8월 15일 남북한학생회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같은 기성세대는 지난 4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한심스럽습니다. (중략). 43년 만에 만나는 학생들은 목 놓아 울어 더러워진 강산을 깨끗이 씻어 주기 바랍니다. 꼭 만나고 오십시오.” (p.260)

1997년 봄 북한에 대기근이 났지만, 남쪽에선 별 움직임이 없어서 분노한 마음에 <녹색평론>에 실은 ‘죽을 먹어도 함께 살자’라는 칼럼이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조금씩만 나눠 보내면 올여름 햇강냉이가 나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아닌가. (중략). 비록 얼굴은 마주 보지 못해도 함께 나눠 준 쌀과 밀가루로 우리는 한 겨레, 한 동포라는 걸 확인하면서 살자. 그래서 이 땅에 다시는 한스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자.” (p.285)

시대를 앞서간 동화작가 권정생은 고된 역사와 분단된 조국에 아파했다. 그 역사의 가장 큰 희생양은 어린이와 여성이어서 더 아파했다. 10년만 더 살았으면 지금의 남북 모습을 보며 기뻐했을 권정생의 모습이 떠 올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닌 70년대는 한국 작가의 동화보다는 안데르센이나 이솝우화 읽기를 장려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이 외국작품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훌륭한 한국 작가의 작품이 많다.

나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게 되면 매번 어린이 코너에서 새로운 작품을 읽는다. 어떨 땐 읽으며 코끝이 찡할 때도 있고, 소리 내 웃을 때도 있다. 외국작품 못지않은 한국 아동문학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권정생의 동화를 읽으며 동화작가를 꿈꾼 작가들일 것이다. 권정생이 있어서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하다.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dh9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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