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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책의 향기]언 땅 위에 핀 아동문학의 꽃, 권정생 덧글 0 | 조회 404 | 2018-05-25 11:15:50
관리자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충렬 지음/336쪽·1만5800원/산처럼
◇피터 래빗 전집/베아트릭스 포터 지음/황소연 옮김/720쪽·2만2000원/민음사

권정생 선생의 집을 찾은 이들은 좁고 열악한 공간에 빼곡히 쌓인 원고지와 책을 보고 놀랐다. 문제작들을 연이어 써내는,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작가의 투병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선생은 자신의 삶이 이야깃거리로 이용당하는 데 상처를 받곤 했다. 산처럼 제공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버린 끝에, 참다 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참다 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됐다’는 말이 이 서문에서처럼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사찰 집사로 교회 새벽종을 치며 습작에 매달린 지 17년 만에 출판된 첫 동화집 ‘강아지똥’(1974년) 초판에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은 이렇게 썼다. 거지가 글을 썼다고. 고대하고 사무쳤을 첫 책에 터놓은 이 거침없는 고백이 읽는 이의 가슴까지 저미게 한다. 수사가 아니라 전쟁과 분단을 겪은 그의 삶이 문자 그대로 그랬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권정생 작가의 동화 ‘강아지똥’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이 알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파고든 전기는 없었다. 이 책은 한국 아동문학의 대표 작가 권정생 선생의 타계 11주년을 맞아 전기문학 작가인 저자가 2년간 취재해 재구성해 낸 일대기다. 집도, 돈도, 친구도, 배운 것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병약한 소년이 모두를 울리는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기까지 일흔 해 동안의 가슴 시린 여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삶에는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농축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살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고생만 하다 가신 그리운 어머니, 짐이 되기 싫어 일부러 멀리 보낸 동생. 생계가 막막했지만 19세 때 발병한 폐결핵에 늑막염을 평생 앓느라 일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결핵균이 방광까지 퍼져 수술을 받은 후로는 소변 줄인 고무호스를 옆구리에 꽂고 지내야 했다. 그런 그의 유일한 힘이 신앙과 글쓰기였다.

그의 시선은 불우한 이웃, 천대받는 사람들, 전쟁과 분단의 아픔 속에 짓밟히고 희생됐던 평범한 이들의 삶에 맞춰져 있었다. ‘강아지똥’은 그의 분신이었고, ‘몽실언니’는 전쟁 발발 전 그가 봤던 이웃이자 친구였다.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아픔과 불행, 가난을 다룬 그의 동화는 한국아동문학의 독창적 영역을 일군다. 주요 작품들의 집필 배경을 중심으로 아동문학가 이오덕과 버팀목이 돼 준 문단 동료들과의 교류, 이루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도 재구성된 대화를 통해 세밀하게 복원했다.

 

그의 삶을 따라가는 내내 울음을 삼키게 된다. 겨울 문간방 이불을 파고든 생쥐조차 내쫓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베어버리려 하는 교회 마당 대추나무를 부둥켜안고 운 작가. 냉골에 배를 곯으면서 인세를 속이는 출판사와 시비 가리지 않던 작가. 입고 갈 옷이, 여비가 없어 시상식조차 못 가는 처지가 값싼 동정을 받아도 차마 싫은 소리 한 번 못 했던 작가. 하지만 투병의 고통, 고독한 노후에 쓴 유서에조차 여유를 잃지 않는 그 내면은 누구보다 단단해 보인다. 

“만약 다시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연애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도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서 환생은 그만둘 수도 있다.”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평생 동화로 끌어안고 산 작가. 삶 자체가 슬프고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였던 인간 권정생을 만나고 나면 그의 작품을 다시 읽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고전동화 ‘피터 래빗’ 27권을 모두 모은 전집도 나왔다. 빅토리아 시대 신분제도의 모순과 급격한 산업혁명의 폐해 속에서 자유, 자연을 향한 갈망을 토끼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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